사치인가요? │ 지난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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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고 티비 프로그램에서 본 적 있다. 사랑하는 남녀 둘이 결혼을 약속하고, 법률혼이 아닌 사실혼으로 함께 살아가는데.. 그 둘이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자 쪽의 간암 말기, 시한부 판정이었다고. 머리가 다 빠지고 털모자를 쓴 바싹 마른 여자의 모습이 나오고 그 옆에서 병수발을 하는, 병원에서 쪽잠을 자고 혹시나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 노심초사하는 남자의 모습. 그리고 서로 너무 애틋하게 사랑하는 모습. 죽기 전에 웨딩드레스라도 입고, 반지라도 끼워주고 싶어서 병원에서 잠시 외출해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고, 반지를 고르는데 여자는 말한다. 힘들다고.. 이렇게 남들처럼 다닐 수도 없고, 커피 한잔 못 마셔서 슬프다고. 웨딩드레스 조차 병원에서 입어보고 가발을 쓰고 준비를 한다. 그러나. 결혼식 며칠 전에 병세가 악화되고 결혼식은 취소가 되었다. 하객들은 모두 병원으로 찾아서 그녀를 응원하고 그를 위로하고, 축복했지만 새벽녁, 여자가 떠난다. 남자는 아직 그녀를 그리워하며 암환자들을 위해 기부하고 봉사활동을 하며 살아간다는. 그런 이야기. 내 몸 속에 있는 세포들은, 생각보다 빠른 진행속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 폐에도 그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그래, 그래서 그렇게 기침을 하고 숨이 찼구나, 싶다. 일상생활을 하며, 집 안 거실을 걷는것만으로도 숨이 차올라, 식탁 테이블을 잡고 서서 숨을 몰아쉬는 내가, 그럴만도 했다. 주말부터 지금까지 5일동안, 밥이라고 먹은 것은 채 한공기도 되지 않은 듯하다. 물을 마시고, 차를 마시고.. 밥을 한숟갈 뜨고 나면 입맛이 없다. 넘어가지도 않아, 그냥 밀어내고 다시 앉으면. 그 한숟갈도 먹은 것이라고, 구토가 올라온다. 순식간에 5일동안 4Kg이 빠졌다. 보고싶다는 내 한마디에 당신이 내려왔다. 지하주차장, 차 안에서 당신과 나란히 앉았다. 나와도 괜찮냐는 당신의 말에, 나는 웃으며, 괜찮아. 이렇게 보니까 또 좋은걸, 이라고 말한다. 포장을 하려고 했는데... 하며 무언가를 꺼낸다. 빼빼로가 가득담겼다. 나는 그저 웃어버렸다. 하하하, 이게 뭐야.. 작년에도 못 챙겨준 것같고 해서, 포장도 할려고 했는데.. 하며 당신은 웃는다. 종류별로, 가득가득 담겼다. 이거 먹지도 못하는데... 하며 말끝을 흐리자, 당신도 아차 싶은지 도로 뺏으려든다. 아냐, 두고두고 하나씩 먹지뭐. 많이 말고, 하나씩 하나씩. 몸은 괜찮냐는 당신의 말에 나는 내 상태를 설명한다. 나 짧으면 6개월.. 길면 2년, 이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어. 폐에도 있다고 하고... 그게 보통 그런 순서래. 폐로 전이됐다가, 임파선이나 뇌로 가는 경우도 있고.. 또 갈비뼈나 늑막이나 뼈로 가는 경우도 있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당신은 고개를 돌린다. 내 장례식에 올꺼지? 안가. 왜.. 와야지. 나 가는길 보러 와야지. 내가 거길 어떻게 가냐. 와. 나 가는데 보러 와. 와서 소주도 한잔 주고, 인사도 하고.. 안 가. 그럼, 나 인제나 횡성에 수목장 해달라구 할껀데. 거긴 올꺼지? 안 가. 뭐야, 1년에 한번은 나 보러 와야지. 내 생일이라던가, 우리 만날 날이라던가. ... 왜, 강원도라서 너무 멀어? 멀어야 오면서 내 생각하고, 가면서 또 내생각하지. 담담하게 말하다가 눈물이 핑 돌아, 목소리가 이내 떨렸다. 눈물을 떨구는 내게 당신은 나를 쓰다듬고, 당신 눈가도 반짝거린다. 다 낫고 오래오래 살아야지. 평생 내 옆에 있어야지. 죽긴 왜 죽냐. 평생은 무슨.. 결혼할거면서. 할지 안할지는 모르는거지. 그러니까 나아. 나아야 산에도 가고 바다도 가고 하지. 이내 나는 당신을 끌어안고 울다가 이렇게 보면 또 좋을걸.. 하며 또 웃는다. 치료 받고, 몸에 좋다는거 다 챙겨먹고.. 그럼 나을거야. 알았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나을 것인지. 낫지 않고 떠날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 일. 자꾸 꿈을 꿔.. 무슨 꿈?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길을 가르쳐주는데, 당신이 날 불러. 그쪽이 아니라고. 누가? 산에서 내려가는 길에. 어떤 할머니가 이쪽 길이라고 가자는데, 당신이 뒤에서 야, 어디가! 하면서 날 불러.. 절에 갔다가 아저씨가 내려가는 길은 이쪽이라고 같이 내려가자는데 또 당신이, 길도 못찾냐고 날 또 불러. 이거 물어보니까 다 죽는 꿈이라던데, 그렇지? 당신은 잠시 침묵하더니, 내가 다 살렸네. 이제 살겠네. 하고 웃는다. 나도 마주보고 웃는다. 내가 살렸으니까 낫도록 너도 노력하는거다.. 알았지? 하고 나를 다독인다. 잠을 설치는 밤이 길어진다. 먹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지고, 구토하는 횟수도 많아지고. 어제부터는 적은 양이긴 하지만 하혈까지 하고 있다. 많이.. 많이 무섭다. 잘 견뎌내고, 참아내고.. 당신과 함께 하는 시간이, 오래오래. 좀 더 오래오래, 길어졌으면 좋겠다. 이게, 사치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카페의 승아네 남자친구가 내게 말한다. 그렇게 아플땐 사랑보다는 자기 몸을 먼저 챙겨야지. 솔직히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면, 내 꿈이 먼저고, 내가 먼저여야 되잖아. 근데 왜 찐은, 항상 그를 챙기지? 내 꿈이 그사람이니까요. 라고 대답하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럼 꼭 쥐고있어. 잃어버리지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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