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갈 수록 나아질 거라는 믿음 │ cinq.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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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약이라는 말, 시간이 해결해줄테니 기다리라는 말, 전에는 들으면 나를 화나게 하는 말일 뿐이었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 시간이 지나면 무조건 나아질 거라고? 시간이 뭐길래 모든 걸 해결해 준다는 거야? 시간은 나를 스쳐갈 뿐, 나를 변화시키지는 않아. 나는 단단한 상자 안에 든 채로 시간을 여행할 뿐. 내가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이상 시간은 나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어. . . 하지만 요즘은 시간이 지나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문제들이 저절로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든다. 왜냐하면 기를 쓰고 상자 밖으로 기어나왔기 때문이다. 이제 시간이 내게 선물하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시간과 나 사이의 차갑고 투명한 벽을 깨고 나왔기 때문이다. 시간이 줄 수 있는 것은 끊임없는 자극이다. 그 자극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변할 수가 없다. 지금 나는 나에게 전해지는 온갖 자극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내 문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일에 관심이 생기고, 나에게 전해져오는 다른 사람의 마음이 느껴진다. 물론 아직까지도 그 소통이 원활한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나와 사람들 사이에 에너지가 오고가다 보면 조금씩 더 민감해질 거라고, 내 몸도 마음도 더 열릴 거라고 믿는다. . . 관계도 연습이다. 솔지히 말하면 지금까지 나는, 다른 면에서라면 몰라도 관계에 있어서는 날로 먹었던 것 같다.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았고 오로지 내 마음의 문을 열심히 두드리는 몇몇 사람들에게만 문을 열어주었다. 마치 절처럼. 절대로 밖으로 나오지는 않은 채. 들어오는 사람을 거부하는 법은 별로 없었지만, 사람을 구하러 산 아래로 내려가진 않았다. 손님이 적은 겨울엔 늘 외로웠다. 봄이 되면 북적이는 탓에 기뻤고, 점점 사람들이 줄어드는 가을이 되면 나는 왜 절일까, 하고 나 자신을 탓하곤 했다. 이제는 산 아래로 내려가보려 한다. 길손들이 오가는 절간이 되는 건, 운치가 있을 지는 몰라도 아주 외로운 일이다. 나는 왁자지껄한 마을에 살고 싶다. 아직 모든 짐을 싸서 내려가기는 무섭다. 그래서 가끔씩 가벼운 등짐을 메고 마을에 놀러가보려 한다. 그렇게 며칠씩 놀다가 다시 돌아오고,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면 어느새 나도 마을 속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마을 초입에 서서, 보이지 않는 그 선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것은 언제나 조금은 무서운 일이다. 마을 전체가 온 몸으로 나더러 들어오지 말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하지만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면서 그 선을 넘어보아야지. 사람들이 나를 받아들여줄거라는 믿음, 그 믿음을 얻을 때까지. 그리하여 내 꿈은 저 마을 안에 자그마한 나의 공간을 갖는 것이다. 문을 열면 사람이 있는 그곳에 사는 것이다.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옆집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마을 한 켠의 작은 집 방 한 칸에 사는 것. 내가 말 하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눈 쌓인 절간에는 가끔씩 가는 걸로 좋다. 내 작은 마당이 웃음 소리로 가득차고, 심심하고 무료한 어느 오후에 슬리퍼를 신고 걸어나와 아무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 마루에 앉아 수다를 떨 수 있는, 그렇게 가슴에 걸리는 벽이 없는 마을에서 살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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