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고 있죠? │ 지난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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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울고 있었어요. 내가 쓴 일기들을 보며 한참을 울다가 담벼락을 봤어요 당신이 남긴 메모에 놀랐고, 한참 지나버린 날짜에 놀랐어요. 당신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알죠? ^^ 새학기가 시작한지도 벌써 두달이 지나가고 있네요. 그래요. 곧 5월이에요. 봄을 알리던 매화가 떨어지고 목련이 떨어지고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들도 떨어지고, 이제 온통 초록잎이에요. 나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고양이 한마리를 키워요. 12월 초부터 3개월된 길냥이 하나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어요 키운다기보다, 이녀석에게 위로받고 힐링을 하고 있어요. 노란색 치즈태비인데, 코숏 중에서 단연 탑 순위권인 미모를 자랑한답니다. 이름은 '보리'에요. 그치만 항상 '개보리'라고 불려요. 도도하고 당당한 고양이라고 다들 알고있겠지만 제 보리는 제가 부르면 쪼르르 달려오고, 쓰다듬으면 골골골 노래부르며, 배를 보이며 누워서 뒹굴뒹굴해요 제가 심심해보이면 옆에 와 '미요미요' 노래를 하고 제가 쪽쪽-하고 소리를 내면 콧등으로 제 입술을 툭 치며 뽀뽀해주는 예쁜 아이랍니다. 지금도 제 책상 모니터 옆에 앉아서 타닥타닥 움직이는 제 손가락을 바라보고 있어요. (장난감 아닌데 ㅠ) 저, 시력을 점점 잃어간답니다. 그래요, 머리 속에 들어앉은 나쁜녀석때문에, 시신경이 눌리고 붓고 해서 안압도 높아지고요. 그래서 점점 안 보이게 될거래요. 2주전에 병원을 다녀왔어요. PET을 다시 해야하는데, 아직 날짜를 잡진 않았어요. 잘 먹고 잘 다니고해서 이제 건강해진 줄 알았어요. 그래서 이제 보통의 사람들처럼, 잘 지내면 되는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말이죠. 정기검사를 하러 갔다가 다시 발견을 했지요. 녹내장 위험군이라 뭐, 시력에 대해서는 포기를 하고 있었지만 막상 현실이 되고나니까 .. 그래요. 암담하다고 해야하나 보이지 않은 삶이란 어떤 걸까요? 내 미래처럼 뿌옇고 흐릿한 생활이 아니라 아예 깜깜하다면 오히려 더, 내려놓기 쉬울까요? 다시 음식조절을 하고 운동을 하고 있어요. 체력이 이렇게 저질이 된 줄은 몰랐어요. 하루에 1시간 걷고, 근력운동을 하는데도 온몸이 다 아프니.. 이 모든 이야기는 그 사람에게 비밀입니다. 말하지 않았어요. 음. 말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도 했는데 말이죠. 말한다고한들 달라질 것도 없고, 말해봤자, 걱정만 늘어나겠죠. 이런 상황들을 알고 있다고 , 알게 된다면, 그걸 이용해서 내가, 더 투정부리고 매달릴까봐. 그냥 독하게. 이렇게 말 안 했어요. 그의 부모님은 윗동네에 전원주택을 지으셨고, 그는 혼자 아파트에 살아요. 같이 살림살이를 준비해서 채워넣고, 얼마 전엔 카펫도 깔았고, 뒹굴거리며 티비도 보고요, 치킨도 주문해서 함께 먹고, 요리같지 않은 요리도 하며 지내요. 술을 한잔하고 잠든 그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밀린 설거지를 해주고 거실청소도 해주고, 널어놓은 빨래들을 개어 서랍에 넣어놓고 나오기도 해요. 그럼 다음날 출근한다고 일어나선 깜짝 놀랐다며 전화가 오죠. 그런 그의 반응들이 재미있어요. 우리가 함께 산다면 그게 일상이 될텐데. 퇴근하고 저녁을 먹고, 야식으로 치맥을 먹고 티비를 보고 뒹굴고 씻고 함께 누워서 이야기를 도란도란 하며 까무룩 잠들고. 한사람은 설거지를 하고 분리수거도 하고, 또 한사람을 빨래를 널고 개고.. 나는 왜, 태어났을까요? 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울었어요. 내가 엄마의 실수로 태어났다지만, 뭔가 살면서, 뭔가 있지 않을까.. 특별함을 갖고싶었나봐요. 아무것도 아닌데, 나는. 그렇게 주저앉아 우는데, 보리가 다가와 미요미요 울었어요. 개보다 고양이가 더 감정적이고 동화가 잘 되는 동물이라고 들었는데. 이녀석을 외롭다 느낄때마다 제 품에 파고드네요. 이녀석이랑 오래오래 살아야될텐데 말이에요. 시력을 잃고 몸도 더 약해져서 이녀석 밥그릇에 밥 주는 것도 힘들어지면 어쩌죠? 히... 쌤. 이제 여름이 오겠죠? 회색 그림자 속에서, 언제 가을이 오려나.. 손가락을 곱으며 전 또 10월을 기다리겠죠? 10월이 영영 오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이대로이길 바라요. 정말. 내 마음 속에 자라나는 불안이, 내 모든 곳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나는 견디다 견디다 못해서 그냥, ... 또 내려놓을까봐. 너무. 힘든 이야기만, 아픈 이야기만 써놓은 것 같아서 미안해요. 왜 나는, 하필 이런 감정일때 당신의 메모를 봤는지.. 좋은날, 좋은 날에, 다시 쓸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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