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늘 나에게 생긴 일   카테고리가뭐야
 덥고 땀나고 역시 복날 hit : 2222 , 2002-07-22 02:27 (월)
2002/07/21
전철을 타고 친구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난 약속시간에 꼭 10분을 늦게 나가는 더러운 습관이있다.
난 기다리는게 너무 싫다.
역시 이기적인 인간인 것이다.

전철에 있으면 첨 보는 사람인데도 자꾸 눈이 마주쳐서 어색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오늘도 전철에서 어떤 한 소녀랑 자꾸 눈이 마주쳤다.
아니 그 애가 먼저 날 자꾸  쳐다봤다.
그리고 나도 그 애의 뽀얗고 통통한 뺨이 귀엽단 생각과 생각없는 듯한 멍한 표정이 인상적여서 눈길이 가고 있었다.

그래서 곁에 누가 앉았는지 주변에 뭐가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그녀를 자꾸 쓰다듬는 손이 있는걸 알아챘다.
그 손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40후~50대 초반으로 보이는 거칠게 생긴 등치 좋은 아저씨였다.

여자애는 멍하니 가만히 있었고 남자는 좋아서 입이 귀에 걸쳐가며 어깨를 끌어 안고 머리 팔등을 쓰다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닮은 구석없는 두 사람이었고 부녀지간에 저렇게 다정하게 끌어 안고 만지는 사이가 어디있단 말인가.

몇번을 망설이면서 두 커플을 지켜 봤다.
아이는 학교를 안다니는거 같았지만 젖살이 뽀얀 피부는 분명 넓게 봐도 15~18세정도였다.

나 뿐만 아니라 그 전철에 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그 의문의 커플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감정적이 되기 전에 잠시 생각해보자.

만약 저 아이가 미성년자에다가 보호자도 없이 저 아저씨에게 의존하고 있는 상태라면 싫건 좋건도 없이 같이 있어야 할 상황일꺼다.

그럼 차라리 아저씨가 애를 해치지만 않는다면 애도 원해서 함께 있는거라면 또 다른 대안도 없는거라면 놔두는게 낫지 않을까?

그치만 저 불보듯 뻔한 커플을 그냥 내버려두는게 과연 옳은 일일까.
난 왜 지나치게 또렷한 대안도 없이 남의 일에 이렇게 깊이 참견해서 고민하는걸까.

그 커플이 내리려고 일어났다.
난 용기를 내서 아이에게 물어봤다.
\'실례지만 두 분이 부녀지간인가요?\'
차마 궁금해도 묻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의 호기심어린 시선이 쫙 몰렸다.
아이는 대답을 안했다.
남자가 참견했다.
\'뭐래?\'
\'부녀지간이냐는데?\'
남자는 여자애를 끌어 안고 느끼하게 쓰다듬으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저런...질문 방법이 틀렸다.
이런식으로 물어보면 이런 대답밖에 할 수 없잖아.
부녀지간이라는데 내가 어떻게 더 참견하겠어.

하지만 누가 봐도 뻔한 관곈걸.

난 이 순간 어쩌면 좋지?
약속시간은 늦었고 저 소녀에게 사연을 물으면 뭔가 대답이 나올거 같고 대답이 나온다 해도 내가 어떻게 대처해줄 방법도 없고..지나친 참견이란 생각도 들고.
하지만 가슴 한편에 몰려드는 내 병적인 참견병이 그 아이의 사연을 지어내고 있었다.

가출해서 집에 들어가긴 힘들고 돈도 처소도 없고 마침 알바하게 된 곳에서 알게 된 기능공 아저씨가 잘해주고 잘곳도 생기고 용돈도 주니 차라리 여기서 몸이라도 편하자.그러면서 있는걸 수도 있어.

아님 방학을 이용해서 멀리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아르바이트로 원조교제를 먼저 신청해서 보람찬(?) 방학을 보내는걸 지도 몰라.

부모님에게 버림받아서 삼촌처럼 거두어준 아저씨에게 성상납을 대신해서 생활고를 이어갈지도 몰라.

멋도 모르고 생각도 없는 철부지가 아저씨가 하자는대로 꼬임에 넘어가 그러구 놀구 있는걸지도 모르지.

처음엔 싫었지만 점차 무뎌져서 아무 느낌없이 세상을 사는 거일 확률은 정말 높아.

그들이 전철에서 내리길래 나도 내려서 그들을 몇걸음 미행했다.
그러다 역시 주제 넘는 참견이라는 그리고 내게 아무 대안이 없다는 자격지심이 발걸음을 돌려버렸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줄려고 손에 쥐었던 내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그대로 접었다.

마음이 아팠다.
그 애는 나름대로 자신의 방식대로 사는 법을 터득한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멍하고 아무 개념없는 눈빛과 슬프도록 뽀얀 얼굴이 자꾸 생각나서 마음이 아팠다.
내 위주로 그 애를 판단하는건 아닐까.

난 아직도 잘 모르겠고 앞으로도 모르겠지.
그리고 세상엔 그보다 더 기구한 사연을 갖고 사는 어린 소녀들은 넘쳤겠지.

그치만 내 눈에 걸려든 이상 그녀는 내게 특별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그냥 혼자 가슴아파하면서 그때 말을 더 걸어서 그 소녀를 개인적으로 만났더라면 현실을 바꿀 순 없어도 마음가짐에 조금은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줄 수 있지는 않았을까.

돈이라도 있었으면 그애를 불러다 \'얼마면 되니?\'라고 주머니를 털어볼텐데.

지금도 그들을 놓친 그 장소와 시간에서 비디오 되감기를 하고 있다.

그녀의 텅빈 영혼에 내 기도가 도움이 되길.

AGAIN  02.07.22 이글의 답글달기
참 세상은 말세야..

ㅡㅡ;;
참.. 세상은 말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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