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hit : 2407 , 2010-05-19 01:59 (수)

중3때 그 도시에 있었다.

긴 휴교후 학교에 갔을때 얼굴을 알지 못하는  친구의 책상에 국화꽃이 놓여 있었다.

소총을 든 고등학생이 공중전화 부쓰에서 통화하는 걸 들었다
"엄마. 친구집에서 자고 갈께"
그 형이 통화를 끝낸후 울었던가?
쭈그려 앉아 얼굴을 묻던 기억만 있다.

판화가 오윤이나 이철수가 조각도로 세긴 대동세상이 내겐 전혀 추상적이지 않았다.
10일간 열린 해방 공간을 경험했으므로.

선생님이 "전두환 대통령께서...."라고 이야기 하면 약속한듯  모두 웃었다.
그 것은 공인된 농담이었다.

그후  군인들이 다스렸던  나라는 내게 큰 상처가 되었다.

월급을 받는 생활을 시작하며
통장을 처음 만들었을때 비밀번호란에  8005 라고 적었다.

5월 어느날,  업무차 경희대를 갔다.
너무나 파란 하늘과  그보다 더 맑은  여학생들의 웃음 소리에 눈물이 날뻔했다.
가위눌렸던 내 젊음이 생각나서.............
역시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가끔 "당신들이 지금 누리는 자유가 그때의 피 덕분이다"라고 말하고 싶을때가 있다.
6.25 어려운 시절을 이야기하는  아버지 세대처럼.
난 아버지 세대의 그런 이야기가 싫었다.


그렇다고 내가 다르게 살지도 않는다.
부끄러운가?
모르겠다.


어쨌든,  이제 나의 정치적 당파성은 오직 몇년에 한번씩 열리는 선거를 통해 표출될 뿐이다.



억지웃음  10.05.21 이글의 답글달기

국사라는 과목을 배울때에는,
이렇게 많은 년도들과 사건들,왕의이름들.....까지 내가 알아야 하나 싶었어요
그래서 국사과목을 매우 싫어했고, 흥미도 없었지요.

그리고 나서 고3때 다큐 한편을 보게 되었어요, 근현대사에 관련된 다큐였는데
참 눈물나는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거기에 감명을 받고 근현대사 과목을 선택해서 듣기로 했어요. 그래도 그 때에는 일이 일어난 사건을 외우는데 치중해서 지식을 쌓는데만 급급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건 산 공부를 한게 아니라 죽은 공부를 한 거였네요....^^;.....

전쟁,군사적 통치 아래에서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저의 유년기는 얼룩지지 않은 정말 따뜻한 나날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네요.
또, 제가 자라난 곳이 농어촌 지역이라 풀향기 흙향기 맑은 공기 마음껏 마시며 자유분방하게 커 온 것도 있구요.

아픈 시기가 지난 후에 따스한 시기가 온다는 것을, 솔직히 요새 젊은이들은 잘 알지 못해요... 저 역시도 마찬가지구요...
개인의 고뇌나, 현실적인 굴레, 본인의 아픔 만이 존재 하지요....

Old Trafford  10.05.21 이글의 답글달기

저 분들때문에 지금 민주화를 외치며 살고 있다는걸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어요,, 그리고 저에게 주신 소중한 투표의 권리를 꼭 행사하려하고요^^

   [펌]비겁한 변명입니다 [1] 10/06/03
   사과 (Sa-Kwa) [6] 10/05/30
   운영자님 [2] 10/05/29
-  5.18
   ㅇㅇ숙씨의 하루 [3] 10/05/18
   RE : 외계인님께 [3] 10/05/07
   욕망 10/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