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현의 <교과서가 깜빡한 아시아 역사> 서평   공개
  hit : 3191 , 2010-09-22 06:49 (수)
'북소년'. 사회과 임용 준비생과 교사의 인터넷 커뮤니티 이름이다. 얼마 전 이곳에서 새로운 교육 과정 개편안을 두고 역사과와 비역사과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국사의 선택 과목화를 비판하는 목소리와, 국사의 필수 과목화를 비판하는 주장이 맞붙었다. 우선 국사의 선택 과목화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절대적인 대세를 차지하는 포털 사이트 게시판과 분위기가 달랐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국사가 여타 과목에 비해 특별 대우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

눈여겨 볼 부분은 국사의 필수 과목화를 주장하는 쪽의 근거였다. 대개 일제 강점기를 들먹이며 역사는 되풀이되기 때문에 역사를 배워야 한다는, 민족정기 운운하며 한국 사람으로서 우리 역사를 모르고서야 어찌 한국 사람일 수가 있느냐는, 외국에서는 어떻게 하는데 우리는 왜 이러느냐는 등.

그런데 상투적이고, 밋밋하지 않은가? 무겁고, 버겁지 않은가? 민족의식, 역사의식을 내세워 역사를 반드시 배워야 한다는 당위성만 강조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역사를 중요하다고 여기면서도 답답함을 느끼는 건 이런 데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당위성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이 역사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유쾌하면서 의미 있는 방법.













▲ <교과서가 깜빡한 아시아 역사>(유재현 글, 김주형 그림, 그린비 펴냄). ⓒ그린비
<교과서가 깜빡한 아시아 역사>(유재현 지음, 그린비 펴냄, 이하 <교깜>)은 유럽 중심의 세계사 체제에서 소외된 아시아 역사를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서 역사를 흥미롭게 보여주는 방법을 알 수 있다.

만약 당신이 40명의 중·고등학생을 놓고 역사를 가르친다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에게 역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설득시켜야 한다면? 일제 강점기, 민족정신, 역사적 사고력 운운할 생각 마시라. 학생들 곧바로 졸기 시작한다. 적을 알아야 싸울 수 있듯이 학생을 알아야 효과적인 전략을 구상할 수 있다.

요즘 학생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재미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과거에 비해 떨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일면적이다. 왜냐하면 지금 학생들은 과거와 달리 재미를 느끼고 동기만 유발되면 정말 무섭게 달려들어 파고든다. 우리가 할 일은 학생들의 집중력을 탓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어른들 또한 다를 바 있겠는가? 이런 측면에서 이 책은 매력적이다. 왜냐하면 '예능 감각' 때문이다.

<교깜>은 개그, 해학, 기지, 패러디 등 모든 장르의 유머를 펼쳐 보인다. 역사 예능의 '향연'이다. 19세기 말 제국주의로 치닫는 일본을 한 개의 컷으로 웃겨버린다. 일본 제국주의 깃발을 들고 진흙탕으로 걸어가는 일본군. 잠시 후 진흙을 뒤집어쓴 채 멍한 표정으로 나오는 일본군. "좀-비-등-장".

1930년 호치민은 베트남 공산당을 만든다. 그러나 코민테른의 지시에 따라 베트남 공산당은 인도차이나 공산당으로 강제로 통합된다. <교깜>은 이 장면을 어떻게 묘사할까? 호치민 앞으로 갑자가 뭔가 날아온다. 살펴보니 밤송이. 무슨 뜻인가? "까라면 까"라는 것이다.

1950년대 미국의 지원을 업고 베트남 수상에 오른 응오딘지엠은 나라를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예식을 치른다. 다음 컷에 누가 등장할까? 교회 건물 뒤에서 얼굴을 내미는 MB. 그의 얼굴에 달린 큰 땀방울. 지나가는 행인의 대사 "비슷한 일이 지금도 있지!"

이런 유머가 역사를 우스개로 만드는 걸까? 아니다. 역사를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심각한 표정으로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할 게 아니라 유머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게 더욱 필요하다. 지명도 없는 가수들이 자신을 알리기 위해 무엇부터 하는가? 예능에 나와 유머를 통해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그나마 그의 음악이라도 들어주기 때문이다.

요즘의 역사도 인기 없는 연예인과 다를 바 없다. 역사는 대형 기획사에 소속된 아이돌 스타가 아니라 잊혀진 7080 세대의 스타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한물간 나이든 스타인 '역사'를 애써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의 관심을 역사로 돌리려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역사 교육의 최전방에 선 교과서의 실태는 어떠한가? 유머의 씨가 말랐다. 마치 웃음기를 뺀 정형돈 같은(정형돈은 그나마 몸 개그라도 하는데). 역사 교과서를 읽는 건 고행이다. 완독한 학생들의 몸에서 사리가 나왔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역사를 유쾌하게 보여주는 <교깜>의 모습은 타당하다.

이제 사람들의 눈길을 모았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갈고 닦은 노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야 한다. <교깜>은 유머로서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뒤 잊힌 역사를 생생하게 그려내 보여준다.

3권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벌어진 세 차례의 인도차이나 전쟁을 담았다. 전후 복구 사업을 벌이느라 알제리를 점령하느라 인도차이나 반도의 식민지를 유지하느라 정신없는 프랑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도 반성 없이 식민지를 유지하려고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유럽 열강들, 전후 세계를 주무르며 공산주의의 확산을 경계하는 미국, 미국과 냉전을 벌이며 공산주의를 확산시키려는 소련, 소련과 사회주의 이념 논쟁을 벌이는 중국, 식민지에서 탈피하여 독립 국가를 건설하려는 인도차이나반도의 국가들. 인도차이나반도의 상황은 얽히고 섞인다. 그럼에도 <교깜>은 그림을 통해 복잡한 상황을 논리적이고 구체적으로 깔끔하게 정리해낸다. 역사의 복합성과 중층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3권은 이 시리즈의 백미다.

그럼 왜 <교깜>은 인도차이나 전쟁을 말하려는 걸까? 인도차이나 반도의 역사는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역사를 아느냐 모르냐에 따라 현대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새롭게 볼 수 있다.

대개 우리 세계사 교과서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식민지 시대는 거의 종결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갔다고 말한다. 자본주의 발달, 과학기술의 발전, 국제적 협력의 증진 등으로 인류는 발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소 냉전에 가려 잘 언급되지 않는 인도차이나 전쟁을 세계사 맥락에 끼워 넣으면 '새로운 시대'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통킹 만 사건, 군산 복합체의 이익을 배려한 미국의 베트남 폭격,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 인도차이나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도 제국주의적 행태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여전히 제국주의의 맥락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인도차이나의 역사는 의미 있다.

가끔 우리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나 다국적 자본의 후진국 노동력 착취 등을 들으면 '이런 일이 지금도 일어나는가?'라고 의아해 한다. 또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표의식이 뒤따르는 건 아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사건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 맥락적으로 배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건이 역사적 맥락을 상실하면 의미와 가치를 지닐 수 없다. 사람들이 사건의 의미를 모르니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동기를 지니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과거의 역사는 단지 과거의 역사로만 존재하고, 현재 벌어지는 사건들은 이해할 수 없는 무의미한 사건으로 남는다. 역사를 배워도 흥미를 차츰 잃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교깜>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역사를 복원시킴으로써 아시아 역사, 나아가 세계사를 맥락적으로 다시 구성해낸다. 낱개로 떠다니던 사건들을 맥락 속에 배치하여 그 의미를 살려낸다. 역사를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보다 맥락을 구성하여 보여주는 게 역사를 느끼게 하는 것일 게다.

영화 시나리오 작법에는 다음의 원칙이 있다. 'Keep it visual!' 뜻은 간단하다. '그림으로 얘기하라!' 이야기를 관객에게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것이다. 복수심에 불타는 주인공이 있다고 하자. 그의 복수심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영화 <올드보이>의 대수를 떠올려보자. 일식집에서 산 낙지를 아작아작 씹어 먹는 모습. 그게 바로 복수심이다.

지금껏 우리는 역사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당위적으로 설명하려고 한 건 아닐까? 우리가 겪은 근·현대사의 시련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역사를 무겁고 딱딱하게 만드는 것 같다. 유머를 바탕으로 역사를 맥락적으로 보여주는 <교깜>은 사람들에게 역사를 유쾌한 것으로 기억하게 해줄 것 같다.


                               
                                                                                              /하상범 안산 양지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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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심 많은데 읽어봐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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