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나카지마 이츠시)  
  hit : 3324 , 2011-07-09 02:28 (토)

이능, 소무, 사마천, 이렇게 세 사나이가 등장하는 이능(李陵)편이 특히 좋아 도서관에서 두번이나 빌려
봤던 책이다.

그런데, 묵직한 울림은 있으되 공감이 없어 의아했었다. (대개 공감이 울림을 주지 않던가?)
이번에 아예  책을 사서 찬찬히 읽어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이능(李陵)편>은 나같은 장삼이사가 아닌,  다시는 일상의 안락으로 돌아올 수 없는, 그리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험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던 순정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진한 위로였다.


한(漢)나라의 무제(武帝)가 재위에 있던 천한 2년 9월에, 기도위 이능은 보병 5천을 이끌고
흉노와 대적하기 위해 북으로 향했다.

북행하기를 30일, 오천의 보병은 기병을 주력군으로 한 흉노의 8만 최정예부대와 마주쳐
싸우고 후퇴하는 처절한 전투를 반복하다 거의 전사하고, 이능마져 적장 선우에게 사로잡히고 만다.

한나라  무제는 중신을 불러모아놓고 적에게 패한 이능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를 논의했다.
이능은 포로가 되었으나, 결정에 의해 그의 처자 권속과 재산등이 처분되는 것이었다.

모든 중신들이 이능의 매국적 행위를 비난할때 오직 한 사나이만이 그를 변호한다.

"생각건데 이번에 이능은 5천도 채 되지 않는 보병을 이끌고 적지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수만의 흉노군을 바쁘게 뛰어다녀 지치게 만들고, 무기가 떨어지고 길이 막혔어도 빈 활로
적을 위협하며 죽음을 무릎쓰고 싸웠다 하옵니다.

패전했다고는 하지만 선전의 경우에는 정당히 천하에 표창해야 마땅한 줄 아옵니다. 
생각건데 그가 죽지않고 포로로 잡혔다는 것도 은밀히 저 곳에서 고국에 보답하고자 하는 뜻이
있어서가 아니겠사옵니까"

무모한 그 남자, 태사령 사마천(司馬遷)은 무제의 명에 의해 생식기가 잘리는 궁형에 처해진다.
5개월후, 치욕에 떨던 그는  붓을 잡고 사기(史記)를 쓰기 시작한다

사로집한 이능은 기회를 엿보아 적장 선우의 목을 베어 탈주하기로 마음을 먹으나, 
선우는 그런 마음도 모르고 자신이 대적했던 가장 강한 장수 이능을 극진히 대접한다.

그러던중, 흉노에게  패배한 한나라 장수 공손오가 "흉노가 강한 것은 이능이 적을 도와 군사를 훈련
시키고 군략을 가르쳐 한국에 대바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는  모략을 하게된다

격노한 한무제는 이능의 노모와 처자, 형제를 모두 죽이게 되고 반년이 지나 소식을 전해들은
이능은 너무도 강한 분노에 눈물마저 말라버린다.

그는 북방정벌에 공을 세웠으나, 간신들의 방해로 끝내 자신의 목을 쳐 자결한 할아버지 이광의 최후를
떠올리며 한나라에 대한 마음을 거둔다.

몸과 마음을 둘데없는 그에게는 종일 말을 타고 돌아다니가 어둑어둑해지면 지쳐 영내로 돌아올때
밀려드는 피로만이 유일한 구원이었다.


이능이 흉노의 포로가 되기 1년 전부터 한나라의 중랑장 소무(蘇武)가 흉노에 포로로 억류되어
있었다. 선우에게 항복하기를 거부한 그는 바이칼호수 연안에 홀로 유배되어 상상을 뛰어넘는
곤궁과 결핍, 혹한, 고독을 태연히 견디며 살고 있었다.

수년이 흘러 결코 항복시키지 못한 이 불굴의 손재를 생각해낸 흉노왕은 이능에게 소무의 안부를
확인함과 아울러 동시에 만약 그가 건재하다면 다시 한 번 항복을 권해 보도록 부탁한다.

들쥐를 잡아먹는 곤궁속에서도 태연히 자신의 소신을 지키고 있는 소무를 만나며  이능은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행위가 한나라에 알려지기를 바라지도 않고 있다. 자신이 한나라에 받아들여지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이 이렇게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서 고난과 투쟁하는 것을 한나라는 커녕
흉노의 선우에게 조차도 알려 줄 사람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죽어갈 것임에 틀림없는 최후의 날에 자신을 돌아보고, 최후까지 자신의 운명을 웃어넘길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하며 죽어갈 것이다. 누구 하나 자신의 자취를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이다"

이능 자신도 흉노에 항복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고국에 바친 충성과 그에
대한 고국의 보답을 생각하면, 아무리 무정한 비판자라 할지라도 그 "어쩔 수 없었던 것'을 인정
하리라 믿었다.

그런데 여기 한 남자가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앞에 두고도 결코 자신에게 그것은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을 허락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5년이 지났다. 아무도 모르게 북방에게 굶어죽은 것으로 여겨졌던 소무가 한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19년전에 소무를 따라온 상혜라는 사람이 한나라의 관리를 만나 소무의 생존을 알리고
소문을 퍼뜨려 소무를 구출하도록 했던 것이다. 급히 바이칼호수 연안으로 사신이 달려가고
소무는 선우의 뜰로 불려나오게 되었다.

이능의 마음은 동요되었다. 하늘은 역시 보고있다는 생각이 이능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보고 있지 않은듯 하면서도 역시 하늘은 보고 있었던 깃이다.
그는 숙연한 두려움으로 떨었다. 지금도 자신의 과거가 옳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 소무라는 남자의 존재가 전혀 문제되지 않았던 자신의 과거를 부끄럽게
여기도록 하고, 그 흔적이 지금 천하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가슴이 쥐어뜯기는
느낌이었다.

이별을 앞두고 이능은 소무를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 말하고 싶은 것은 산더미처럼 많았다.
그러나 그 것을 말하면 푸념이 되어 버린다. 그는 이에 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잔치의 흥이 절정에 이르자 흥에 겨워 일어나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 중에 목소리가 떨리고 눈물이 빰을 타고 흘렀다.
기개없는 자신을 타일러도 보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소무는 19년만에 조국으로 돌아갔다.

 
티아레  11.07.11 이글의 답글달기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문정희

(투옥당한 패장(敗將)을 양심과 정의에 따라 변호하다가 남근(男根)을 잘리우는 치욕적인 궁형(宮刑)을 받고도 방대한 역사책 사기를 써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규명해 낸 사나이를 위한 노래)


세상의 사나이들은 기둥 하나를
세우기 위해 산다
좀더 튼튼하고
좀더 당당하게
시대와 밤을 찌를 수 있는 기둥
그래서 그들은 개고기를 뜯어먹고
해구신을 고아먹고
산삼을 찾아
날마다 허둥거리며
붉은 눈을 번득인다

그런데 꼿꼿한 기둥을 자르고
천년을 얻은 사내가 있다
기둥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사내가 된 사내가 있다
기둥으로 끌 수 없는
제 눈 속의 불
천년의 역사에다 댕겨놓은 방화범이 있다

썰물처럼 공허한 말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에도
오직 살아있는 그의 목소리
모래처럼 시간의 비늘이 쓸려간 자리에
큼지막하게 찍어놓은 그의 발자국을 본다

천년 후의 여자 하나
오래 잠 못 들게 하는
멋진 사나이가 여기 있다


- 시집 <어린 사랑에게> (미래사, 1991)


제가 가끔 가는 어느 시인의 블로그에서 전에 본 시가 생각나서 옮겨봅니다.


언제부턴가 남다르게 훌륭한 사람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며 자괴감에 빠져드는 일을 멈추게 되었어요. 각자의 그릇, 타고난 능력이나 재능이 다 달라서 자신의 분량이라는 게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면서부터요.

감당할 수 있는 그 이상을 섣불리 짊어지지 않는 것도 지혜 같구요..
(저는 나중에 크게 후회하게 된 선택도 해본지라,,)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이 어느 정도인지 서서히 알아가는 거 같아요.

그룻 자체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부족한 자신을 책망하고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자기비하와 자괴감이라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비범한 그들의 삶에서 좋은 자극은 받아들이되 평범한 내 삶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장삼이사, 안락한 일상이라고 하셨지만 평범한 삶 조차도 살아내기가 결코 쉽지가 않은 게 우리네 인생이잖아요.
"우리 사람되기 힘들지만, 괴물은 되지 말자"는 어느 영화 대사가 말해주듯.
이 정도의 긴장, 그것도 나쁘진 않아요^^;

프러시안블루_Opened  11.07.24 이글의 답글달기

방금 책을 읽다 발견한 내용
Google 의 구호가 "Don't be evil"이라네요.

앞뒤가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습니다
ㅇ 구글이 세워진 해는? ==> 1998년
ㅇ 생활의 발견이 출시된 해는? ==> 2002년

한 인터넷기업의 지극히 인간적인 구호가
바다 건너, 동양의 한 감독에게 위안을 주었을 가능성이 크군요

그리고,
티아레님과 저에게도...

티아레  11.07.24 이글의 답글달기

재밌네요^^

<6년>에 관한 글.. 마음에 남아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한동안
이어지네요. 이가림의 시도 참 좋구요.

프러시안블루_Opened  11.07.25 이글의 답글달기

"내가 내가 일천번도 더 입맞춘 별이 있음을
이 지상의 사람들은 모르리라"는
구절을 참 좋아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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