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청춘의 문장들   2011년
  hit : 698 , 2011-10-30 10:37 (일)

                      

고향은 택시의 미터기가 소용 없는 곳이었다. 시내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기본요금으로 그 어디든 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도시였다. 나는 가게가 있던 그 거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반 아이들 이름을 모두 외우듯 나는 그 거리의 집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 거리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재건된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몇십 년을 이어져왔다. 그러던 게 1990년대 접어들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작은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체인점이나 대리점이 그 자리를 메워나가기 시작했다.

제과점을 하던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 즈음 점점 손님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그 세월 동안 나는 자라 청년이 됐는데 가게나 그 거리는 몰락하기 시작한 셈이다. 그 무렵, 커피를 마시며 창 밖을 바라보면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형제는 크라운베이커리나 파리크라상 같은 체인점으로 바꿔야만 가게가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건 하나마나한 얘기였다. 왜냐하면 그럴 만한 돈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 즈음 창 밖을 내다보면 뭔가 지나가는 게 언뜻언뜻 눈에 보였다. 바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이었다.

우리 가게 옆집이었던 남경반점이 ‘야래향’으로 바뀐 것도 그 즈음의 일이었다. 장개석의 사진과 대만의 풍광을 담은 달력이 걸려 있던 남경반점은 중국인 진씨가 운영하던 가게였다. 박정희 정권 아래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남경반점은 꿋꿋이 버텨나갔다. 진씨에게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가 있었는데, 둘 다 대륙 기질이었는지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키가 커서 어딜 가더라도 눈에 띄는 아이들이었다. 진씨는 그 아이들을 타이뻬이에 유학 보냈는데 남경반점에서 번 돈 대부분을 써버렸다. 그 거리의 오래된 가게들처럼 남경반점도 점점 허술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남경반점이 사라지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타이뻬이로 유학 갔던 아들이 돌아왔다. 이미 세상을 떠난 진씨는 대만에 정착시키고 싶었던 아들이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대만의 대학교까지 졸업한 그 아들이 자기처럼 중국집을 하리라고는. 이윽고 남경반점 간판이 내려지고 ‘야래향’이라는 네온사인 간판이 올라갔다. 야래향은 그 거리에서 보기 드문 중국집이었다. 호화스러운 실내 장식에 자장면 가격이 다른 중국집의 두 배였다. 나는 그게 도통 진씨 아들의 오기처럼 보였다. 그것은 위태위태한 오기였다. 그리 고 야래향은 침몰하는 대형 선박처럼,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아주 천천히 몰락해갔다. 그 거리에 살았던 사람으로, 그리고 진씨의 아들 딸과 이웃으로 지낸 사람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일은 아주 괴로운 일이었다.

내가 최북이라는 18세기 화가를 알게 된 것은 1990년대가 저물어가던 무렵이었다. 새 천년이 다가온다고 온 세상이 떠들썩하던 때였으니까 고향 거리의, 내가 알던 가게는 대부분 사라진 뒤의 일이었다. 심지어는 이마트 같은 대형 할인점이 생겼으니까 작은 소매상들이 망하는 것은 당연했다. 한때 지물포가, 철물상이, 왕자고무신 가게가 있던 자리를 유명 메이커 대리점이 차지했다. 한때는 남경반점이, 또 한때는 야래향이 있던 자리는 모두 부서져 커피숍과 노래방과 옷가게가 들어섰다. 과연 새 천년은 그런 식으로 다가오고 있 었다. 한때 손바닥처럼 그 내력을 낱낱이 알던 가게들의 거리가 낯선 곤충의 껍질처럼 무감각해졌다.

최북을 알자마자 나는 그에게 매료돼 꼭 한 번은 소설로 쓰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다. 최북이 애꾸가 된 사연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19세기 사람 조희룡은 『호산외사(壺山外史)』란 책에서 한 귀인이 최북에게 그림을 요구했는데 최북이 이를 거절하자 그 귀인이 최북을 위협했다고 전한다. 이에 최북은 분노해 “남이 나를 저버리느니 차라리 내 눈이 나를 저버린다”라고 말하며 송곳으로 한쪽 눈을 찔러 애꾸가 됐다고 한다. 대단한 기세, 대단한 오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만큼 대단한 화가냐 하면, 같은 시대 사람 단원 김홍도를 칭찬하는 말 가운데 “최북이 취해서 함부로 욕하면서 자기가 최고라고 했던 것과 단원이 어찌 같으리오. 최북은 궁사(窮死)했고 그림 값도 쌌다네”라는 모욕적인 구절이 나올 만큼 그림의 질이 들쭉날쭉했다. 그렇다면 오기다. 자기 손으로 자기 눈을 찌른 것은 오기에 불과했다. 나는 그 오기의 세계가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이를 조희룡은 ‘北風烈也,(북풍열야),’ 그러니까 ‘북풍(최북의 바람)이 매섭기도 하구나’라는 말로 표현했다.





온갖 수수께끼로 점철된 최북의 일생은 역시 수수께끼로 끝났다. 어떤 사람은 그가 서울의 어느 여관에서 죽었지만 그게 언제인지는 알지 못하겠다고 말하지만 동시대 사람 신광하는 그가 어느 겨울 술이 취해 돌아오다가 잠든 채 폭설에 묻혀 죽었다고 남겼다. 이에 신광하는 ‘君不見 崔北雪中死(군불견 최북설중사 :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최북이 눈 속에서 죽은 것을)’로 시작하는 유명한 「최북가(崔北歌)」를 썼다.

죽음은 모두 덧없기 짝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죽음이 있는 법이다. 중인으로 평생 궁핍에 시달리며 싸구려 그림을 그려 팔았던 최북의 죽음이 꼭 그런 모양이다. 그래서 훌륭한 그림은 얼마 남지 않았고 다만 눈을 찌르고 ‘최북이 죽을 곳은 이런 절경’이라며 금강산 구룡연에 뛰어들고, 재상댁 자제들에게 “그림을 모른다면 다른 것은 또 무엇을 아느냐”며 소리 지르던 일화만 무성하게 남아 있다. 신광하의 「최북가」는 그런 그를 영생케 만드는 조사(弔辭)였지만, 어쩌면 이 시의 참뜻은 다음과 같은 구절에 있는 것인지 모른다.





담비가죽 옷에 백마를 탄 이는 뉘 집 자손이더냐
너희들은 어찌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아니하고 득의양양하는가?

그러니까 당대에 최북은 위대한 화가로 죽은 게 아니라 실패한 화가로 죽은 셈이다. 위의 말은 최북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훈계를 담았으니까. 하긴 그렇다. 중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궁핍 때문에 그처럼 몰락하는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누구도 자기 삶이 어떻게 끝날 지 알 수 없으니 최북의 죽음을 두고 애도하지 않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그 오기는 과연 무엇인가? 화가가 자신의 눈을 찌르다니. 왜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파멸 속으로 뛰어드는 것일까?

아주 천천히, 야래향이 망한 뒤로 진씨네는 그 거리에서 사라졌다. 떨어져 내리는 은행나무 잎새처럼 뜬소문만이 무성하게 거리를 메웠다. 누군가는 진씨네 딸이 정신병에 걸렸다고 했다. 누군가는 그들이 모두 대만으로 떠났다고 말했다. 이제는 다른 도시들이나 마찬가지로 낯설어진 고향 거리를 걸어갈 때면 유령의 형상으로 보이는 이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다른 어떤 동물도 죽을 줄 아는 길로 걸어가지 않는데, 왜 사람만은 그게 자기를 파멸시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눈을 찌르는 것일까?

                                                       -  44쪽 -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때 바라본 밤하늘을, 그때 느꼈던 따뜻한 고독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왜 누군가를 사랑하는가? 그건 우리가 살면서, 또 사랑하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67쪽 -


1968년 프랑스에서 학생운동이 극에 달했던 시절, 바리케이드 안쪽에 쓰여진 여러 낙서중에 "Ten Days of
Happiness"라는 글귀가 있었다고 한다. 열흘 동안의 행복, 그 정도면 충분하다. 문학을 하는 이유로도,
살아가거나 사랑하는 이유로도. -69쪽-


이백의 장진주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君不見


업무상 만나는 존재란 서로에게 참 쓸쓸한 존재다 -113쪽-

이덕무가 글을 뽑고 박제가가 서문을 붙인 <학산당인보가>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거문고 갑 속에 간직하여 두었더니
이따금 줄 끊어지는 소리 들려오누나

내 마음속에 간직해둔 거문고들도 이따금 줄 끊어지는 소리를 울린다 125쪽-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김광석은 젊어서 죽고 2003년을 기점으로 나는 김광석이 살아보지 못한 나이를 살게 됐다. 정약용의 시 중에 다음과 같은 게 있다.

어느새 가을 멀리 가버렸으나
숲나무엔 가을 뜻 아직 남았네
적막한 바위 틈엔 물기 마르고
맑은 시내 어귀에 뗏목 깔렸다
나무꾼은 상수리 밤톨 줍고
스님은 우물에서 무를 씻네
석양빛 아직 아니 사라졌는데
등나무엔 초승달 벌써 올라와

어느새 청춘은 멀리 가버렸으나 내 마음엔 여전히 그 뜻 남아 있는 듯, 지금도 나는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 몸이 아파온다. 석양빛 아직 아니 사라졌는데 등나무에 벌써 올라선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버린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청춘은 그런 것이었다.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가는 그 빛도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떠나버렸다.   -141쪽-




평균적인 한국 남자라면 다 알 테지만, 어쨌든 입영통지서를 받게 되면 삶은 애매해질 수밖에 없다. 도서관 건물을 지었다면 그 다음에는 책을 채워 넣어야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입영통지서의 가장 큰 기능은 거기에 있으니까. 예컨대 인간미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그 종이쪼가리에 돌아오는 12월 쯤 입대하는 것으로 돼 있다면 그때까지는 어떤 계획도 세울 수 없다. 뭐, 총검술이라도 미리 연습한다면 좋은 계획이 될 듯도 하지만, 그런 인간이 있을 리 만무하다. 세상이 종말을 맞이하는 걸 지켜보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는 실연하면서 이미 알게 됐지만, 그게 또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는 입영통지서를 받아보고야 알게 됐다. 새 양말 한 짝도 살 수 없는 처지라니!



해서 군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에게서는 달관의 풍모가 느껴진다. 뭘 열심히 파고든다고 해도 입대하면 말짱 헛수고라는 걸 알기 때문에 무엇에도 열중하지 못한다. 입영통지서를 받는 순간, 그들은 민간인의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으나 입대하기 전까지는 군인이 될 수도 없는 몸이므로. 군복이라도 미리 택배로 받을 수 있다면 다림질이라도 해놓으련만. 내 개인적 경험으로 보자면, 그런 인간들, 그러니까 지금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조금의 계획도 세울 수 없는 처지가 된 인간들이 열중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뿐이다. 바로 음주와 연애와 여행이다. 매달 계좌에서 종신보험료가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샐러리맨들이 마음 놓고 하지 못하는 세 가지이기도 하다.



                                       - 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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