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분량은 사람마다 다 같지 않아요. 사람마다 품을 수 있는 사랑의 크기는 각자 다르고, 또 같은 사람이라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죠. 대개 자기 자식에 대한 사랑의 크기가 제일 큰 것 같은데 엄밀히 말해, 그건 본능이자 자기애의 연장이니까 여기선 논외로 하고요.
님과 같은 상황에 처했을때, 상대의 문제가 곧 내 문제요, 두 사람은 운명공동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만큼 상대에 대한 애정이 크고 두터운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안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어요.
전자의 경우라면, 다른 선택에 대한 고려 없이 일단은 두 사람이 합심해서 투병하고 회복하기위해 전심전력을 다 하겠지요. 사실 이렇게 해서 회복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후자의 경우, 이런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 상대와 헤어지고 다른 건강한 사람과 만나 다시 시작해서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자연스러울 거구요.
보통 이 두 경우 사이 어디쯤에 놓이게 될텐데 그런 경우 책임감이나 의무감, 상대에 대한 의리나 자신의 노력으로 애정의 부족분을 메우려 하겠지요.
하지만 본디 갖고 있는 애정이 적은 경우 거기에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요. 님의 경우, 지금은 그 사랑도 현저히 식었고, 차마 인정상 상대에게 이별을 통고할 시기만 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 같네요.
다시 말하지만, 사람마다 가질 수 있는 사랑의 분량은 다 달라요. 비단 사랑만이 아니에요. 각자가 갖고 있거나 가질 수 있는 능력이나 그릇, 견딜 수 있는 한계 등이 사람마다 다 다른 것과 같은 이치지요.
자신의 분량이나 한계를 확인할 기회가 있어 그걸 스스로 알고 있는가 모르고 있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 그러니 남들이 하는 얘기는 더 이상 중요치 않아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허다하니까요. 더군다나 님과 같은 처지가 되어본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애정이나 도의감 등의 분량이 큰 사람은 차라리 덜 힘들어요. 그런 사람은 상대에게 헌신할 수 있는 마음이 더 자연스럽게 우러나오겠지요. 하지만 그걸 꼭 그 사람이 대단해서라고는 할 수 없어요. 그 사람에게 주어진 힘이 원래 큰 거니까. 님 같은 사람이 정작 가장 힘들죠. 누구도 님을 탓할 수 없고, 탓하지 않을 거예요. 님의 고민의 핵심도 그건 아닐 거구요.
일단은 버텨보고(버틸 수 있는 자신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그건 아직 모르잖아요) 더 이상 감당이 안되면, 인정하세요. 상대의 문제가 내 문제는 될 수 없노라고. 거기까지가 자신의 한계라고. 내 문제도 벅차서 감당하기 힘들 때가 있는 게 인생이니까요.
할 수 있는 한 버텨보라는 건 상대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훗날 님을 위해서 더 그래요. 남친이 혹시라도 잘못될 경우, 보통 사람이라면 버텨보지도 않은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 때문에 괴롭겠지요.
그렇지 않을 자신이 있거나 이미 자신의 한계에 이른 것 같다면, 지금 이별을 고하는 것도 방법일 거예요. 이별의 타이밍은 상대에게도 몹시 중요한데, 병세가 호전되고 있는 지금이 병세가 더 악화될지도 모르는 이후보다는 타격이 그나마 덜 할테니까요. 상대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겠지만 그게 어디 쉽겠어요.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해도 힘들 수 밖에 없다는 게 님이 처한 상황의 근본적인 문제일 거예요. 제가 이 글을 오래 망설인 이유도 그걸 거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