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를 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deux.
  hit : 2235 , 2012-02-20 22:01 (월)

오늘은 입학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의욕 넘치게 입학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신입생들에게 수강 신청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조장 역할도 맡았다.

그러나,
신입생 친구들에게 잘 다가가서
대화를 나누는 몇몇 친구들과 달리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익숙치가 않다.
내가 무엇을 느끼는 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 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른다.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줬으면 하는 생각도 별로 없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다.

몰랐던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다.

.
.

그래서 신입생들과 가진 술자리에서도
나는 그냥 술만 마셨다.
잠깐 바깥에 나와 담배를 피는 친구들 틈에 서서도
나는 그냥 그들이 어떤 모양으로 이야기를 하는 지
듣고 있었다.

'아, 대화는 저렇게 하는 거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생각,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
.

그렇게 가벼운 술자리를 갖고 난 뒤,
나는 별 급한 일도 없었지만
어서 자리를 뜨고 싶어서
무리를 떠나 집으로 향했다.
그l고 내 뒤를 이어 신입생 남자 두 어 명이
따라 나왔다.
나는 열심히 먼저 걸어갔다.
방향이 갈리기를 바라며.
신호등이 빨리 바뀌어서 서로 만나지 않기를 바라며.

그런데 신호등은 빨간불이었고
그들과 나는 만났다.
그들이 가까워지는 소리가 들리고 
내 등 뒤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질 때
나는 아찔했다.

신입생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집에 가시나봐요.'

그리고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어디 사세요?'


.
.


그리고 즐겁게 이야기를 하면서
지하철 역까지 걸었다.
그리고 그 중 한 명과는 방향이 꽤 같아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갔다.

나는 무엇을 그렇게 두려워했을까?
막상 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걸까?
마치 모든 사람들이 고슴도치라도 되는 것 마냥.

그 신입생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느낀 것은,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면 할 수록
대화는 편안해지고
관계가 형성되어 간다는 것이다.
친밀감을 느낀달까.

.
.


그래서 좋았다.
꽤나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한 것 같아서.
그리고 신입생 친구와 친해진 것 같아서.

거창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털어놓자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지금 당장 느끼는 것,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것
그런 일상들에 대한 나의 '감정'을 
충실히 이야기하면 되는 것이다.

그냥,
'나'에 대해 전달하면 되는 거야.
상대방은 나를 모르니까.

극단적인 생각 때문에 마음을 막지는 말아.
상대방과 터놓고 이야기한다고
네가 과거에 겪었던 안 좋은 일들,
성폭행, 가정 폭력, 부모의 이혼,
이런 것들을 다 털어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야.

-


나는 항상 이렇게 생각한다.



연애를 하면
나의 과거 이야기들을 가감 없이 해야할 것 같아서
두렵다.
그 어떤 관계보다도 개방 될 수 있는 그 관계가 두렵다.
나의 더럽고 암울한 과거까지 
상대방에게 털어놓아야 할 까봐.

엄마와 싸우면
지금의 문제 뿐만 아니라
과거의 모든 문제들이 터져버릴 것만 같아서
싸우고 싶지 않다.
엄마는 왜 아빠가 나를 성폭행 하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이혼하지 않았냐며.
그렇게 아빠가 좋았냐며.
엄마랑 아빠가 제대로 된 부모라고 생각 하냐며.
내 유년 시절이 어떻게 어둠으로 점철되어 있었는지
알기나 아냐며.

친구와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보면
나의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 할 것 같다.
사실,
대학에 와서 조금 친해진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성폭행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게 아직까지도 마음에 걸린다.
털어놓아서 후련해진 것이 아니라
괜한 것을 이야기한 것 같아서 싫다.
잘못 뿌려놓은 씨앗 같다.


그래서 나는 내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홍수를 막기 위해 둑의 작은 수문 하나도 열지 않는다.
지레 겁을 먹고.


.
.


하지만 오늘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조금 배운 것 같다.
즐겁게 대화하는 것도
조금은 배운 것 같다.

신입생과 많이 친해지지 못해서 아쉬운 하루이지만
하루를 정리하며
무언가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
참 좋다.
bingola33  12.02.20 이글의 답글달기

아 대화는 저렇게 하는것이구나....
아픔까지 사랑할수 있는 사랑하길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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