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와 헤어지지 않는다. │ deux.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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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종일 생각이 수십 번은 변덕을 부렸다. 오빠와 헤어져야겠다, 는 생각과 아직은 좋다, 는 생각 사이. 평소에는 그래도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은 안드는데 요즘같이 오빠가 바쁘거나 시험 기간이어서 예민할 때는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오늘도 하루 종일 생각했다. 이 오빠와는 못 만나겠다, 라고. 자기 스트레스를 감당을 못하고 그 예민함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가뜩이나 내가 기질적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에 예민하고 특히나 뾰족한 사람들과는 잘 지내지 못하는데 오빠가 딱 그런 사람이다. 무슨 말을 하면 부정부터 하고, 긍정의 말은 잘 해주지 않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자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 자주 보지 못한다는 것 자체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닐 지도 모른다. 물론 접촉이 잦지 못하다는 것은 자주 부대끼면서 친밀감을 쌓는 나같은 종류의 사람으로써는 견디기가 조금 힘들긴 하다. 그러나 오빠가 나를 충분히 이해시키고 그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해준다면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 텐데. 2주에 한 번 꼴로 보는데도 그 사이에 오빠는 내게 한 번도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오빠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 보다는 '오빠는 나를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는 사실에 힘들어하고 있는 것이다. 나만 오빠를 보고 싶어하고 오빠는 전혀 나를 보고 싶어하지 않고 예전만큼 나를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느낌이 나를 힘들게 한다. 이에 대해 오빠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이 무슨 자존심인지 죽어도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뭔가 구차한 것 같아서. . . 아무튼 오늘 하루 종일 이 문제 때문에 고민했다. 나와 오빠는 좀 안 맞는 것 같은 느낌. 사람을 그저 좋아하는 것과 그 사람과 만나는 것은 천지차이인 것 같다. 자주 만나지 못하고 이야기하지 못하니 그저 오빠가 남같이 느껴진다. 뭐 아예 낯선사람까지는 아니지만 그냥 '내가 좋아하는 친한 오빠' 정도의 느낌? 멀다. . . 그래도 나는 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빠를 만남으로써 맞닥뜨리게 되는 나 자신의 모습이 아주 많고 또 그것을 극복해나갈 수 있는 기회가 무한히 주어지기 때문이다. 오빠는 나에게 중요한 시험 문제 같은 사람이다. 부정적이고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겁에 질려 있는 나는 자기 주장이 강하고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비꼬는 듯한 말투를 가진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내 주장을 잘 하지 못한다. 고등학생 때도 그런 친구들과는 모두 거리를 뒀고 직장에서도 그런 동료와는 잘 지내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오빠는 그런 사람이다. 자신의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예민해지는 사람. 그래서 나에게 삐딱하게 구는 사람. 모난 구석이 있고 말투가 각져 있는 사람. 그러나 그런 오빠도 내가 이야기하면 들어준다. 나의 요구를 묵살하지 않는다.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다만 말투가 그럴 뿐이다. 나는 그런 사람에게 더이상 상처받지 않고 주눅들지 않고 내 주장을 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아직은 힘들다.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언젠가는 될 것이다. 몇 개월이든 몇 년이든 몇 십년이든 그 얼마나 시간이 걸리든 어쨌든 나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를 기다린다. . . 오빠는 성적으로 나를 원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고 있고 나를 안고 싶어한다. 나는 이것에 대한 본질적인 거부감이 있다. 특히 성적인 욕구에 대한 거부 반응. 나에 대한 사랑, 나에 대한 요구에 대한 근원적인 혐오감. 믿음, 신뢰, 그리고 거짓되고 왜곡된 사랑이 아닌 '진짜 사랑' 에 대해서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 새끼는 나를 사랑해서는 안되는 사람이었다. 나를 성적으로 원해서도 나를 성적으로 안아서도 안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새끼는 그렇게 했다. 그럼으로써 내게 사랑과 성행위에 대해서 혐오감을 만들어놓았다. 부딪치고 있다. 이것도 언젠가는 될 것이다. 조금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겠지만 어쩄든 될 것이다. . . 나는 오빠에게 바라는 것이 아주 많다. 나는 그 새끼에게도 바라는 것이 많았다. 나를 가만히 내버려둬 주기를. 나를 건드리지 않기를. 제발 나에 대한 성폭행을 그쳐주기를. 그러나 나의 울음, 오열, 부탁, 구걸, 분노, 그 어느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모든 것을 거부당했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게 돌아오는 것은 보복 폭력, 그리고 변함없는 일상, 뿐이었다. 나는 바라는 것이 없었다. 그저 내 마음 하나 편하면 족했다. 미쳐버리지 않는 것으로 된 것이었다. 그러나 오빠와 만나면서 계속해서 원하는 것이 생긴다. 그리고 요구하고 싶어진다. 아직은 요구할 수 없지만 요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하기 싫은 것, 분명하게 인식하고 분명하게 요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 나는 사랑할 줄을 모른다. 따스한 감촉 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나 오빠를 만나면서 누군가와 껴안고 뽀뽀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나는 이제 남자의 냄새를 싫어하지 않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보다 크고 힘이 센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 . 나는 내가 싫다. 내 자신이 너무나 싫다. 내가 내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은 오빠와 만나면서 알 수 있다. 그냥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 혼자 있을 때, 오빠와 있을 때, 나는 내가 싫다. 가장 깊은 곳의 목소리다. . .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는 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리고 네가 나를 사랑하고 있는 지도 솔직히 나는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잘 하고 있는 건지 네가 나에게 잘 하고 있는 건지 우리가 서로에게 잘 하고 있는 건지 잘 만나고 있는 건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렇게 사귀느니 차라리 깔끔하게 헤어지는 편이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헤어지고 남는 시간에 만나고 싶은 친구들도 만나고 내가 하고 싶은 일도 하는 것이 낫겠다,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와 헤어지지 않는다. 너는 나에게 숙제와 같은 사람. 나에게 수많은 시험문제와 숙제를 내어주는 사람. 그리고 그로 하여금 나를 성장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다. . . 미안하지만 나와 함께 해주렴. 그게 싫다면 네가 나를 떠나면 그만이란다. 너는 나보다도 4살이나 많은 성인이잖니. 나는 네가 떠난다면 잡지는 않을 것이다. 너도 나와 헤어지지 않고 있는 이유가 있을 거야. 상담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안달복달하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이왕 이렇게 된 거 얻을 것을 다 얻으라고. 나는 너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얻을 것이다. 성장할 수 있는 만큼 성장할 거야. 물론 거짓된 마음으로 너를 만나지는 않을 거야, 절대로. 마음이 완전히 식고 더이상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너를 만나지 않을 거란다. 하지만 지금은 적어도 아직은 너를 좋아해. 그러니 우리 계속 만나자. 너로 인해 날마다 맞닥뜨리게 되는 나의 모습들이 나는 무척이나 흥미롭고, 그것과 부딪히는 과정들은 굉장히 힘들지만 그럼에도 나날이 나아지고 있는 나의 모습이 나는 굉장히 좋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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