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3198 , 2013-08-07 21:45 |
하나양, 말로 풀어내기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하나양의 부모님에 대한 “미움과 분노의 감정”에 대한 얘기예요.
먼저 물어볼께요.
엄마가 왜 그렇게 밉고, 아빠에 대해 왜 그토록 강한 분노를 품고 있나요?
이 질문을 읽고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까요?
몰라서 묻는 거냐고.
그들이 하나양에게 어떤 짓을 하고 어떤 잘못을 했는지 다 알지 않느냐고.
그런 부모가 밉고 원망스러워서 분노가 치미는 건 당연하지 않냐고.
하나양의 이런 항변에 나는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또한 동시에 나는 그게 당연하지 않다는 얘기를 해보려고 해요.
오랜 시간 하나양의 마음 속에서는 의식하든 못하든
그 "미움과 분노의 싸이클"이 수도 없이 돌고 있을 거예요.
잠시 잊었다가도 아주 사소한 단서만 다시 주어져도 그 싸이클은 거의 자동으로 돌지도 몰라요.
그 과정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볼께요.
"그들이 나에게 이러저러한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다.
=> 그래서 나는 지금 불행하다.
=> 나의 불행에 대한 책임이 있는 그들이 밉고 분노가 치민다.
=> 이런 미움과 분노 때문에 또 괴롭고 불행하다.
=> 내가 행복하려면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야 할텐데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 >이 모든 것의 원인은 그들이 저지른 잘못에 있다."
과거지사를 없었던 일로 되돌릴 수는 없는 지금 하나양의 고민은 이 부분일 거예요.
“이런 미움과 분노 때문에 괴롭고 불행하다.
=> 내가 행복하려면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야 할텐데 그 방법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 내가 문제 삼고 싶은 부분은 거기가 아니고 바로 여기예요.
“그들이 나에게 이러저러한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다.
=> 그래서 나는 지금 불행하다.”
과거 그들의 잘못이 여전히 지금의 하나양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이 강력한 영향력,
이 단단한 연결고리, 너무나 당연해서 그 둘(과거 그들의 잘못과 현재 하나양의 불행)을
따로 분리해볼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이미 한 덩어리가 되어버린.
이제 의심을 해보자는 거죠. 그 둘을 따로 떼서 분리해서 생각해보자는 거예요.
그들의 끔찍한 잘못 때문에 지금 내가 반드시 고통받고 불행해야하나....?
우리는 흔히 잘못한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을 품는 게 그들의 잘못에 대한 당연한 반응 혹은
마땅한 보복이라고 별의심없이 생각하죠.
거기에 대한 의심이 없고 그걸 당연하게만 받아들이니까 이런 반응은 거의 자동으로 일어나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당연시 하는 반응, 자동으로 일어나는 반응인 미움과 원망, 분노의 화살이
정작 날아가 꽂히는 곳이 어디인가 하는 거죠.
우리는 막연히 그런 원한의 화살이 어떤 식으로든 내게 잘못을 저지르고 상처를 준 그 상대를 향해
날아갈 거라고 믿어버리지 않나요?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그 독화살은 내 심장에 꽂힌 채 그대로 박혀 있어요.
그렇다면 길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이 단단한 연결고리를 깨는 거요.
그들의 잘못과 나의 불행을 하나로 묶고 있는 이 단단히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거요.
그래서 그 속박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게 진정한 자유에의 길이 아닐까요.
하나양 심장에 박혀있는 그 독화살이 보이나요...?
지금껏 하나양 자신을 그들의 잘못에, 그들이 준 상처에 단단히 얽어매고 있는 그 쇠사슬이 보이나요...?
그 화살, 그 쇠사슬... 밖에 있지 않아요. 하나양의 마음 속에 있어요.
하나양의 감정이 곧 그 독화살과 쇠사슬이니까요.
그들의 잘못은 그들에게 돌리고 나의 감정은 내가 껴안기..
그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책임은 그들에게 있어요.
그들은 그 값을 어떤 식으로든 치루게 될 거예요.
하지만 나의 감정에 대한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어요.
다시 말해 미움과 원망과 분노의 화살, 그 독화살을 하나양 심장에서 빼낼 사람은 하나양 자신 밖에 없어요.
하나양 자신을 그들의 잘못, 그 상처에 칭칭 감아 놓은 쇠사슬을 끊어내고 자신을 구원해낼 사람도
하나양 자신 외엔 없어요.
너무 억울하죠.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는데 그럼 원망도 분노도 하지 말라는 거냐고 묻고 싶은 가요?
그게 아니에요.
그 원망과 분노의 감정이 바로 하나양 자신을 해치고 있는 독화살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다름 아닌 그 감정이 하나양을 그 상처에 계속해서 동여매는 쇠사슬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왜 그런 하나양을 구해줄 사람이 자신 밖에 없냐구요?
그 화살, 그 쇠사슬.. 밖에 있지 않아요.
하나양의 마음 속에 있어요.
그 화살을 심장에서 뽑아내고, 그 쇠사슬을 끊어내고 자신을 구원해낼 단 한명의 사람도
그래서 하나양 자신 외엔 없어요.
거기에 대한 책임은 하나양에게 있어요...
융이 개발한 "적극적 명상(active imagination)"은 꿈의 해석과 함께 무의식의 내용을 인지하는 한 방법인데
간단히 소개해 볼께요. 관심이 생기면 더 자세히 찾아보면 좋겠구요.
적극적 명상은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내놓아 마치 자기 주위에 그 감정의 주인공이 존재하는 듯이 상상하고
그와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그 감정의 실체를 집중적으로 추구해나가는 방법이에요.
일단 분노와 원망의 감정을 상대에게서 떼어내오세요.
그리고 자아로 부터도 분리해 내세요.
다시 말해 그 감정의 덩어리를 상대방과 자기 자신 모두로 부터 분리해서
그 자체를 이미지화 해도 좋고 가능한 한 객관화해보세요.
그리고 주의깊게 관조하는 거예요.
거기까지 성공하면 그 감정과 대화를 시도하는 거죠.
그 무겁고 싸늘한 감정(일명 죽음의 에너지)이 올라올 때마다
다른 대상에게 투사하거나 원망의 화살을 던지지 말고 혹은 자책하지 말고
(이건 너무 중요해요. 거의 무의식적으로, 자동으로 우린 대부분 그렇게 해요)
그 감정의 주인공이 마치 자신의 주위에 존재하는 듯이 상상하고
자신의 감정과 대면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원하는 게 뭐냐고.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거냐고.
찾아오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분명히.
그걸 알아보는 거죠.
그러는 가운데 그 거대한 Black Mass와도 같은 짙은 암흑이 서서히 걷히고
놀랍게도 그 죽음의 에너지가 창조의 에너지로 변환되는 시점이 올 거예요.
야수가 왕자로 변하는 순간이요.
필요한 건 용기예요. 그 야수를 대면할 수 있는.
쉽지 않은 숙제죠.
불의 시련..
자신이 영웅신화의 주인공이라는 걸 알고 있나요.
우리 모두는 사실 그래요.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하나양의 마음은 지금 그 영웅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건 하나양 바로 자신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