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3379 , 2014-01-20 15:06 |
출근하면, 남산을 바라보며 담배를 한대 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눈덮힌 남산을 바라보다가 문득 황지우 시인의 <겨울산>을 떠올린다.
너도 견디고 있구나! 로 시작되는....
겨울산
- 황지우-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서 세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서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눈이 내리면 남대문시장통 <순이네 빈대떡>이 나의 아지트다
눈비 내리는 날의 땡땡이는 영업사원의 특권이니까.
열심히 일하는 박부장을 꼬셔 나왔지만
우리는 허술한 유리문밖으로 몰아치는 눈발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서로의 빈잔을 채워줄뿐이다.
이대로 세상의 모든 길이 끊기고, 어디선가 흰 당나귀가 응앙응앙 울었으면 좋겠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이 먼저인지, 권현형 시인의 <달콤한 인생>이 먼저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눈오는날 막걸리 맛이 달콤 씁쓸한 슬픔의 맛인건 알겠다.
달콤한 인생
―권현형 -
이마 흰 사내가 신발을 털고 들어서듯
눈발이 마루까지 들이치는
어슴푸른 저녁이었습니다
어머니와 나는 마루에 나앉아
밤 깊도록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설탕을 타 마신 막걸리는 달콤 씁쓰레한 것이
아주 깊은 슬픔의 맛이었습니다
자꾸자꾸 손목에 내려 앉아
마음을 어지럽히는 흰 눈막걸리에 취해
이제사 찾아온 이제껏 기다려 온
먼 옛날의 연인을 바라보듯이
어머니는 젖은 눈으로
흰 눈, 흰 눈만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초저녁 아버지 제사상을 물린 끝에
맞이한 열다섯 겨울
첫눈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지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며
나는 다가올 첫사랑을 기다리며
첫눈 내리는 날이면
댓잎처럼 푸들거리는 눈발 속에서
늘 눈막걸리 냄새가 납니다
루비
14.01.20
좋은시 감상 잘했습니다 ~~** |
속물
14.01.20
시를 보닌까 맛있는걸 먹어야지 싶네요 ㅎㅎ |
주영
14.01.20
전 눈땜에 살살 걷느라 디스크 올뻔 했어요 ㅠㅠ |
마당쇠
14.01.21
눈오는 날 멋진 시들을 썼네요.. 내일 길이 무척 미끄럽다고 하네요. 빙판길 조심하세요 |
프러시안블루_Opened
14.01.24
우리 준식이는 일기 계속쓰네? |
hyewon2
14.01.23
좋은시 잘 감상했읍니다*^^* |
마당쇠
14.01.29
프러시안 블루형님 덕분에 좋은 일기 습관 가졌네요. 땡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