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신문배달을 막 시작 했을 때,
내가 돌려야 하는 지역을 할당받았다.
그러면서 앞서 그 지역을 돌렸던 사람이 그려준 약도
(신문을 최대한 빨리 돌릴 수 있는 코스)를 외워야 했다.
배달을 하지 않는 낮에도 눈으로 달달 외우고 그랬다.
선임자는 인상적인 가게나 집을 포인트삼아
코스를 정말 잘 표시해줬고, 난 그 약도대로
슈퍼마켓에서 시작되어 길가 오토바이 가게로
끝나는 배달 코스를 빨리 외워서,
처음엔 2시간 이상씩 걸리던 배달시간을
나중엔 1시간도 안되는 시간에
배달을 마칠 정도가 됐다.
신문배달을 그만두고 몇 해 뒤,
일 때문에 알게 된 친구네 집을 놀러가게 됐는데,
바로 내가 신문배달을 하던 그 코스가 있던 동네였다.
반가웠고, 내가 아주 손바닥처럼 훤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주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친구네 집 바로 앞에 있던
슈퍼마켓이 내 배달 코스 순서상 '첫집'이었는데,
그 슈퍼마켓 (큰 길쪽) 뒷집이 오토바이 가게,
즉 배달하는 '마지막 집' 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1시간이나 걸려 돌았던,
첫집과 마지막집이 사실은
바로 붙어있던 '한 집'이었던 거다.
난 아마 오랫동안 '통찰'을 원했던 것 같다.
(건방진 말이지만...) 금요일만 되면,
피켓과 확성기를 들고 사람 많은 곳을 누비며
예수 믿으라 외치는 사람들처럼,
어디가 끝이고 어디가 처음인지 모른채
몽유하는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은거다.
원리를 모른 채, 핵심을 빼먹은 채,
공식만 달달 외우고 들입다 내달리는
바보들의 행진을 하고 싶지 않은거다.
그래서 괴롭지만 또 꺼내든다.
'왜?'
이것이야 말로,
합리적인 시민의 첫 걸음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기를 쓰고
틀어 막으려는 소리일 것이다.
잊지 않고 질문 하기.
그렇게 하면 최소한,
몽유하는 좀비 상태는 벗어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