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차'와 '도둑'은 '소재'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아주 기본적인 재료. 차와 도둑을 합치면 '차도둑'이다. 이것도 '소재'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많은 창작물에 '차도둑'이 등장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은 너무 쉽고 흔해서 별 의미가 없다. 이 단어에서 좀 더 발전시켜보자. '차를 너무나 좋아하는 여자 도둑'. 여기서부터 '설정'의 단계가 된다. '여자도둑'이라는 지점에서 살짝 '특별한 색깔'이 드러나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야기를 짓기 위해 필요한 '소재의 범위'일 뿐이다. 다시 말해, 찾아 보면 '여자도둑'을 가져다 쓴 이야기가 많아 차별화되지 않는 인용의 범주라는 거다. 더 늘려나가 보자. '차를 좋아하는 여자도둑이 차를 훔쳐서, 어려운 이웃의 아이들을 돕는다' 자, 이쯤 되면 마이클 티어노가 말한 '액션 아이디어'가 된다. 그리고 이 지점부터 '독창적인 이야기'로 비로소 자립하게 된다. 더 나아가, '차를 너무도 좋아한 여자 도둑이 차를 매번 훔쳐 이웃의 어려운 아이들을 도우려 하지만, 자신의 방법이 무리하다는걸 깨닫고 공부를 해서 아이들을 돕기로 한다'로 진행되면 작가의 독자적 세계관이 드러나면서 '차별화'가 분명해진다. 왜 이런 얘길 하냐면, '소재'의 차별성은 큰 의미가 없다는 거다. 물론, 박지은 작가의 '짜깁기'능력이 논란을 반복해 일으키고, 너무 눈에 띄는 소재, (최소한 한국에서는) 아직 인용한 횟수가 많지 않은 소재, 그래서 그 자체부터 매우 새로운 창작이라 착각하게끔 만드는 소재를, 별 논란을 의식하지 않고 매번 아슬아슬한 범위까지 끌어다 쓰지만, 그의 '요리능력'이 또 다른 '차별성'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고, 그 '요리솜씨'가 대중적으로 잘 먹히고 있는 점도 간과할수 없다는 거다. 한마디로 말해, 대중적으로 '먹히도록' 하는 능력은, '소재'가 아니고 '요리솜씨'에서 나온다는거다. 그런데 박지은 작가의 진짜 문제점은 사실, 피카소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이 관점에서 보자면, 박지은 작가는 그렇게 위대한 솜씨를 발휘하는 예술가는 아닌듯 싶다. 어떤 소재든 가져와 완벽히 '훔쳤다(재해석, 재창조했다)'면, 매번 모방이라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을까. 사람들이 박지은의 드라마를 두고 일으키는 논란의 핵심은 그래서, '맛있긴 한데, 어디선가 먹어본 듯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유능하지만 위대하진 않다. 그것 뿐이라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