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333 , 2017-12-31 14:19 |
아마도 여름이었을, 약 4년 전의 어느 날이었다. 날이 맑았는지 혹여 구름이 짙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수영을 마치고 나온 참이었다. 한적한 카페 창가에 앉아, 잠시 여유를 부리고 싶었다. 이왕이면 2층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ㄹ자를 그리며 층 낮은 상가들 그리고 각자의 길을 걷는 사람들 사이를 걷다가 발견한 곳이, 이곳이었다. 지금도 내가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곳. 그날 이후로 내가 제법 오랜 단골이 된 것은 그다지 우연은 아니었다. 카페는 식사시간 직후가 아니라면 대개 한산했고, 2층에는 창가를 향해 난 자리들이 여럿 있었고, ‘권태 그 앞에 선 우리’, ‘흩어진다’,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 등의 노래가 흘러나오곤 했다.
이곳에서는 사소한 일기들을 끄적거리기도 했고, 습작이 되어버린 단편소설들이나 학부 논문을 쓰기도 했고, 어설픈 원고를 수정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학부 논문을 쓸 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관심을 보인 선생님 한 분과 얼마간 친구처럼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캐롤을 들으며 역시나 2층 창가에 앉아 지금의 글을 쓰는 일은, 제법 낯설다.
그리고 낯설다는 감상은, 그것만으로는 긍정적일 필요도 부정적일 필요도 없다. ‘익숙한 것에서의 안정을 원했다’거나 ‘권태를 씻기 위해 낯선 것을 좇던 참이었다’는 등의 맥락이 함께 고려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런 맥락은 지금의 나와는 무관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그저 낯설다고 느끼며, 쓴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여섯 시에 가깝다.
사족일까. 나 혹은 우리 각자는 왜 이곳에 소속되어 있는 것일까. 생각은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연적인 무엇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연기적일지언정. 일상에서의 많은 선택은 상황에 이끌리게 마련이다. 매 순간 주체적일 수는 없다. 주체적인 것을 반드시 뛰어난 것으로 여길 필요도, 사실은 없다고 본다. 그러나 하늘빛이 한 점씩 짙어간다. 우리가 지금 한 곳에 속해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지금쯤 생각해 봄직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