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자취방에 대충,
흩어져 누워서 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는지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지만,
세주가 문득 나에게
'저번에' 꿈이 뭐라고 했었는지를 물었다.
그 '저번'이라는 것이 언제였는지 지금은 알 수 없겠지만
나는 '살면서 어긋나지 않을 수 있는 가치관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다시 무슨 이야기들을 했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스무 살이었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진심으로 그런 꿈을 갖고 있었다고 해서,
직업이랄 수 있는 것에 대한 장래희망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중학생 때는 천문학자, 고등학생 때는 사서, 스무살에는 교수,
복무 중엔 작가.
그날 내 자취방에 있던 것은 모두 네 명이었다.
왜 다섯 명이 아니었는지도 지금은 모른다.
우리는 중학생 때부터 모이기만 하면 피씨방으로 직행해서
누군가가 지치거나 불려갈 때까지 게임을 해댔다.
이십 대에 들어서면서는
그때그때의 애인을 소개시켜 주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같이 여행을 간 일이 손에 꼽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다.
오늘은, 그랬던 꿈이 문득 떠오른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영원성을 갖춘 존재 혹은
제 1원리로 삼을 수 있는, 검증 가능한 진리를
고민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염속되었다거나 생활에 찌들었다거나 하는 말로
그 이유를 삼을 수 있지는 않을 성싶다.
물론 철들었다거나 현실 감각이 늘었다거나 하는 말로도.
이제 서른이 된 우리는 부동산학개론을 공부하거나, 한방병원에서 인턴으로 당직을 서거나, 재활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있거나, 변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돈이 안 되는 사업자를 꾸리면서 학계에 도움이 안 되는 석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천문학자나 사서, 교수, 작가의 어느 길로도 향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는 담담하다.
그러고 보면, 요새는 무슨 꿈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 진다. 나를 포함해서 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