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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일기글입니다.
 정신이 없다는 흔한 말  
조회: 544 , 2019-06-02 15:22


"사랑하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구?"
"그래, 만약 결혼해서 그 사람이 불행해지면 그걸 어떻게 견딜 수 있겠니?"
그녀의 오른쪽 엄지와 중지가 왼손가락의 반지를 잡고 천천히 돌리기 시작했다. 결혼한 사람은 모두 불행을 견디고 있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견디기에 가장 어려운 것은 불행이 아니라 권태야. 하지만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기 때문에 현상을 바꿀 의지 없이 그럭저럭 견딜 수 있게 되는 것이 권태의 장점이지.
그녀는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핸드폰 내장메모리는 늘 여유 공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사진은 자동으로 sd카드에 저장이 되도록 해둔지 오래이고, 책의 구절을 찍은 사진들은 다시 폴더를 만들어서 모아둔다. 프레임 없는 매트리스 위에서,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다리에는 이불을 덮고도 시원한 밤공기도 쐬고 싶어서 창문은 조금 열어두었고, 그다지 밝지 않은 주황색 조명의 스탠드를 켜두고 있었다. 들고양이 소리가 가끔 들려왔다.

은희경 작가의 단편을 읽다가 위의 구절을 찍고 새삼 깨달았다. 최근에 핸드폰의 sd카드를 바꿀 때 백업을 제대로 해두지 않았다. 책을 덮고 일어나서 이전에 사용하던 sd카드가 있을 만한 곳을 대충 뒤적였지만 보이지 않았다. 형광등을 켜고 싶진 않았다. 그것이 놓여있을 곳은 어차피 정해져 있을 것이었다. 물건을 제자리 혹은 같은 자리에 두는 습관이 잘 들어있는 것은, 물건을 찾는 일이 느끼기에 참 답답하고 지겹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사무실에서 명함지갑이 보이지 않을 때, 내가 흘려놓고 다른 사람이 장난을 친 거라고 의심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