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쉬는 날.
사실 할일이 많은데 정신적으로 멍때리는 게 너무나도 필요하다고 느껴져 혼자 시내로 나갔다.
혼자 밥먹고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공블리가 나오는 영화나 볼까 했는데
시간이 좀 안맞기도 하고 영화예매사이트에서 1위영화를 클릭해서 리뷰를 보니
대체 왜이렇게 극과 극의 평이 많을까 조금 궁금해져서
82년생 김지영을 보았다.
과장된 신파라는 거의 악플수준의 코멘트와 함께 별하나를 준 사람의 댓글을 보고
영화인데 좀 과장이 들어가면 어떤가 싶기도 했지만
정작 영화를 보는 내내 든 생각은
대체 어디가 과장이라는 거지? 였다.
물론 가정환경이나 사회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을 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주인공이 다른 사람으로 빙의 할정도까지의 정신분열을 겪는다는 설정 외에 영화속에 나오는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이 내게는 항상 보고 듣고 가끔은 직접 경험하기도 했던 참 흔한 일들뿐이었다.
누군가는 댓글로 여자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제일 불행한 줄 안다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응?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은 힘들고 불행한 주인공이 자기가 힘든지 불행한지도 모르며 산다는 거였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여자들은 영화속에 나오는 이런 일들을 겪어도 대부분은 내색없이 x 한 번 밟았구나 하고 아무렇지 않게 웃어 넘기거나, 그냥 혼자 한 번 욕하거나 울고 말거나 하면서 그냥 산다.
여자친구들과 얘기해보면 살면서 한번도 성추행을 당해보지 않은 친구가 없다.
놀라운것은 나만 겪었던 불행한 사건인줄 알고 살았는데 알고보니 나보다 더한 일을 겪은 친구들이 훨씬 더 많았다는 것이다.
성비하나 성희롱 발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따라왔거나 몸을 만지려고 했거나 원치않는 터치를 직접적으로 당했던 경험을 말하는 것이다. 심하게는 성폭행을 당한 친구들도 몇몇 있다. 그런데 그 중 대부분은 사회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기는 커녕 감히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한다. 내 주변에는 딱 한 명 용기있는 아이가 있을 뿐이다. 그 아이는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그 사람에 대항하여 셀수없이 법원에 출석하며 아직도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가끔 나는 그 아이가 받는 손가락질이 참 미안하다. 고개를 떨구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그 아이만 신문에 나고 아파야만 하는 사회라서 참 부끄럽고 미안하다.
범죄자를 모든 남자들에 빗대어 일반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감히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여성권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이런 얘기들로 남혐 여혐을 조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성별을 떠나서 타인을 좀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더 많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성숙한 사회에서는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 누구보다도 그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약자를 제일 먼저 배려할 줄 안다.
82년생 김지영에서는 주인공이 여자로 설정되었을 뿐 우리는 누구나 상대적 약자가 될 수 있다.
약자가 되어 억울하다고 외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쓸모있는 강한 사람이 되어 약자를 돌아보고 배려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