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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미
 [기사]자살증후군, 베르테르현상이번진다!   좋은자료
조회: 1003 , 2005-04-03 13:55
24세 A씨, 실연 비관해 한강 투신”, “연이은 취업실패로 목숨 끊은 여대생”, “20대 여회사원, 죽은 애인 따라 음독”, “우울증 앓아온 주부, 15층 아파트 투신” 요즘 들어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뉴스들이다. 파리 목숨처럼 쉽게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 특히 최근 배우 이은주의 자살 이후 그 현상이 급격히 번진다는데. 과연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무엇일까? 결국 자살도 하나의 유행이 된 걸까? 늘어나는 자살, 긴급진단!  

베르테르효과
1774년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The Sorrows of Young Werther)>은 괴테가 친구의 약혼녀를 사랑하게 되며 겪은 고뇌와 당시 유부녀를 사랑하다 권총 자살한 그의 친구 '예루살렘'의 이야기를 토대로 쓴 일기체 소설이다.
소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인공 베르테르는 로테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그녀는 약혼자가있는 몸. 로테는 그를 우정으로 대하지만 그는 혼자만의 열정에 사로잡혀 끝내 권총으로 목숨을 끊는다는 내용이다.
발간 당시 이 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특히 사랑에 웃고 우는 젊은이들의 큰 공감대를 얻으면서 소설 속 베르테르처럼 노란 조끼를 입고 권총 자살하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일부 유럽 지역에서는 소설 발간이 중단되었고, 이러한 동조 자살을 일컬어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라 칭하게 되었다.
실제로 시대가 흐른 후에도 엘비스 프레슬리의 죽음, X-JAPAN의 히데, NIRVANA의 커트 코베인 등 유명 스타의 자살과 더불어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있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 영화배우 故이은주의 자살 소식이 전해지면서 우울증, 실연, 경제문제 등으로 고민하던 여러 사람이 자살을 실행에 옮기는 일이 증가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죽음이 TV와 신문 지면에 연일 보도되면서 '자살'을 미화시키는 심리와 중독되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 스타의 자살 자체가 유행처럼 번지는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살이 잇따르는 이유는 뭘까? 베르테르 효과의 원인은 동경하는 스타, 공인의 자살에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시킨다는 데 있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고민들이 극대화되고 자살이란 선택이 최종으로 가는 요인이 되는 것. 카프카의 소설 <판결>에서는 자살을 '자기 과오를 씻는 정화 행위'로 의미를 부여했고 몽테뉴, 쇼펜하우어 같은 철학자 또한 자살을 옹호하기도 했다.
자신이 가진 문제의 해결책을 '자살'로 보는 것은 큰 문제. 베르테르의 죽음이 아름다워 보인 이유는, 그의 순수한 사랑이 난관에 부딪쳤고 자신의 사랑을 증명할 길로 죽음을 택한 것이기 때문. 그러나 돌려 보면 과연 사랑을 귀결시킬 것이 죽음 밖에 없었을까?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죽음을 선택한 로미오와 줄리엣,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한 게 문제가 되지 않을까? 결국은 죽음이 어떤 해결책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급선무. 생명과 문제를 뒤바꾸는 것은 전혀 아름답지도 않고 남겨진 자에게는 가혹한, 무모한 행위다.



사람은 소중한 것이 떠났을 때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알게 된다. 베르테르처럼, 죽음을 택한 스타처럼, 그들을 따라 자살을 유행처럼 여겨 쉽게 목숨을 끊은 사람이 있을 지 몰라도 실제로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그들은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을 용기로 살아라", "그보다 더한 고민도 많다" 라고들 하지만 개개인의 고민은 가치나 척도가 없다.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다음 달 메꿀 카드값이 없어 죽음을 생각하는 이도 있고, 애인의 사랑을 얻지 못해 고민하는 이도 있고, 단순히 인생 자체가 재미가 없어 고민하는 이도 있지만 이 모든 고민들이 그 사람 자신에게는 엄청날 수도 있는 문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주변의 사람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고민들을 하찮게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언제 어느 때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이 생길 지 모를 일. 또한 고민을 가진 이들 역시 자신의 목숨이 자신의 것이란 생각은 금물이다. 비록 지금은 혼자라는 생각이 들 지라도 떠나고 나면 남겨진 자의 고통은 어쩌란 말인가. 자살 후 남겨진 가족들과 친구들과 주변인들이 흘리는 눈물과 못다한 사랑에 대한 아픔은 어쩔 것인가. 그마저 책임질 수 없다면 죽음이란 선택은 오만일 수 있다.
생명은 유행에 좌지우지 되는 것도 아니다. 고민하는 그 누군가와 동일시하는 것은 금물. 어떤 문제는 해결책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찾고 찾다 보면 또 다른 돌파구가 있다. 지금 밝게 웃으며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도 제각기 고민은 있다. 신은 인간이 견딜 만큼의 고통을 준다고 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