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8개의 아름다운 벽돌   치유일지
  hit : 2968 , 2014-02-20 13:39 (목)


언제나 먹는 것에 죄책감을 갖는다.

살을 빼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강박까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내 또래 친구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도 살이 찌면 안 되고

지금보다 빼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당연히 살이 찌면 살 빼라는 소리를 듣고

살 찌면 못 생겼고

살 빼면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살이 찌면 게으른 것,

못 생겨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먹는 것에 또 죄책감을 느끼게 되고

살을 빼야만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먹지 않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식욕의 쾌락을 억제할 만큼의 강한 동기 또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먹을 때마다 약간의 죄책감을 안고

먹는 것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살은 살대로 찌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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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을 빼야 하는가?

나는 살을 빼고 싶은가?

나는 별로 뚱뚱하지 않다.

168cm에 63kg정도.

날씬한 것은 아니지만 비만도 아니다.

걸어다니는 데 문제가 없고

건강에도 문제는 없다.

활동성에도 문제가 없다.

살 때문에 생긴 병도 없으며

살이 겹쳐서 피부병이 생길 정도도 아니다.

실제로 내 몸에서 겹치는 부분이라고는 배밖에 없다.

아, 요즘은 살이 쪄서 허벅지가 좀 닿긴 한다.



하지만 내가 왜 살을 빼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가?


물론 내가 초콜릿을 많이 먹긴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초콜릿으로 풀기 때문이다.

이건 좀 고치고 싶은 부분이긴 하다.

왜냐하면 초콜릿을 먹는다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잠깐 괜찮아질 뿐이지.



아무튼

나는 물론 전보다 살이 찌기는 했지만

살을 빼야 할 정도로 뚱뚱하지도 않다.

그냥 지금 이 정도로 살아가도 충분히 괜찮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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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뺴는 것과 운동은 완전히 다른 맥락이다.

지방을 태우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

기껏 먹어놓고 왜 열심히 움직여서 태우는가?

먹지 않든지,

쓰든지,


몸을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여서 공연히 지방을 태우는 행동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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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하면 몸이 가뿐해진다.

물론 처음에는 온 몸에 알이 배겨서 더 무겁다.

며칠 동안은.


하지만 계속해서 운동을 하고

뭉친 것들이 풀어지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몸이 아주아주 가뿐해진다.


무거운 것을 계속 들고 있다가 갑자기 내려 놓은 것처럼,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움직임이 한결 편해진다.

중력이 줄어든 것 같은 느낌.


몸이 이렇게 가뿐해지면 마음도 한결 가뿐해지며,

기분도 더 좋아진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좋아한다.


그런데

'내가 살을 빼기 위해서 운동을 해야 하나?'

라는 의문이 들 때면 왠지 운동이 하기 싫은 핑계가 하나 더 늘어난다.


내가 왜 지방을 태우기 위해서

공원을 삥삥 돌아야 하는가?

아무 의미가 없는 행동처럼 느껴진다.


나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좋다.

움직여야 할 이유가 있어서 움직이는 것은 더 좋다.

어디를 가야 하는데 거기까지 걸어간다든지,

경치가 좋은 곳을 걸어서 구경한다든지.



나는 운동 자체는 참 좋아한다.

살을 빼기 위해서 운동을 한다는 명목으로

운동이 싫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살을 빼야 한다는 압박감에 대해서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살을 빼는 것은 좋은 노력이다.

자신을 더 발전시키고, 더 건강하게 만드는.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내적 동기에서 발현된 것이 아니라

뭔가 주입된 다른 사람들의 가치관에 자신의 몸을 맞추기 위해서라면

나는 싫다.


나는 벗어나서 좀 바라보고 싶다.

다이어트 중독의 위험에 처한 나의 모습을,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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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김에 여기저기 걸어다녀봐야겠다.

다이어트 때문에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니까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운동이 다시 좋아진다.



우리는 지금 이 자체로 아름답다.

나는 지금 이 모습 이대로, 완성이다.

내가 63kg이 나가든 53kg이 나가든 나는 똑같은 나다.

내가 뱃살이 몇 겹이든,

허벅지 두께가 얼마나 되든


물론 다른 사람들은 그것에 따라서  나를 다르게 볼 수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는 세상까지 내가 바꿔주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건 그 사람들의 몫이다.


나는 내 몸을 사랑하고 싶다.

문제가 없는 지금 이 모습 이대로.

충분히 아름답다.


몸에 있어야 할 모든 기관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조화롭게 자신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정상적으로,

아니 오히려 아주 건강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내주고 있다.


나는 좋은 체력과 운동 신경을 가지고 있다.

팔과 다리도 길고,

몸의 비율이 전체적으로 잘 잡혀 있다는 평을 많이 듣는다.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다.


근육량도 적당해서

달리는 속도도 빠르며 반응 속도도 빠르다.

힘도 있어서 북을 아주 잘 칠 수 있고,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신체 비율을 갖고 있어서

악기를 들었을 때 태가 예쁘다는 칭찬을 많이 듣는다.

다리도 적당한 두께와 근육이 있어서 예쁘다.



코도 높고,

눈에도 쌍꺼풀이 있어서 예쁘다.


나는 내 몸이 마음에 든다.

운동신경이 좋아 어렸을 때부터 다방면의 운동을 잘 했다.

학교 체육 시간에는 공학일 때나 여학교일 때나 늘 부장을 맡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참여 했으며, 높은 수행 점수를 받았다.


교내 대회나 교외 대회가 있을 때 학생 대표로 나간 적도 있었다.



나는 아주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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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 브라흐마, 라는 스님이 말씀하셨다.

1000장의 벽돌 중,

2장이 잘못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 잘못된 2장의 벽돌만을 보는 경향이 있다고.

그러나 시각을 조금만 바꾸면


998장의 재대로 쌓아올려진 벽돌들이 그 주변에 있을 것이라고.

그것을 볼 수 있게되면

우리 생에서 아주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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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부터

2장의 벽돌을 문제 삼는 대신

998개의 아름다운 벽돌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살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부터

나를 흠뻑흠뻑 칭찬해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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