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기다린건가...   2013
  hit : 2037 , 2013-08-10 00:00 (토)
지난 일요일.

요즘 후텁지근하여
피서겸 작업실겸 
(여자사람구경겸 ^^) 
겸사겸사
홍대앞 카페로 나오는데..

그날도 점심나절에 나와
하루종일 담배만 피며
요즘 하고 있는 작업의 
실마리를 못잡다가 

저녁나절 겨우 불이 붙어
한창 글의 속도를 올리는데,

내 시야로 쑥! 
손이 들어오며
내 아이폰을 툭툭 치는거다.


'뭐야...?!!'

돌아보니,
낯선 사내놈이
뭐라고 입을 벙긋댄다.
이어폰을 빼고 

'네?' 묻자
'아..저, 이 근처에 
중고서점 어딨는지 혹시 아세요?'
'(뭐래) 모르겠는데요'

그냥 갈 줄 알았는데,
비스듬히 앉더니 
계속 말을 던진다.

'아 뭐 글 쓰시는 분인가봐요..'

뭐지 이 사람...?
건성으로 답하며
시선을 다시 내 노트로 향하는데
계속 던진다.

'너무 열심히 몰두하시길래
궁금해서 한번 봤어요.
저도, 만화를 하는데요...'

그때, 번쩍!

며칠 전 봤던,
내 별자리 운세가 떠올랐다.

'운명같은 존재들이
말을 걸어올 것이며
그 중엔 당신의 미래와 
연결되는 인연도 있다'

이거 혹시.
내가 찾던 '스토리작가' 
뭐 이런거...?

그리하여
혹시나 길잃고 헤매고 있는 
내게 단비같은 스토리 소스를
아낌없이 뿌려줄 구원의 그 분...?

'혹시 담배펴요?'

내가 오히려 질문을 하니
살짝 당황해 한다.

흡연실로 데려가
담배를 피며
얘기를 더 했다.

문하생시절을 거쳐서
(어느 작가 선생인지 들었는데
까먹었다. 안유명하다.)
지금은 혼자서 작업을 하며
원고를 들고 여기저기 다니는
상황인 듯.

근데, 시간도 시간이고,
난 아까 불붙은 여세를 몰아
글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했다.
난 인연이니 운명이니 
이런거 완전 잘 믿는다. 
(이 단어를 남자한테 쓰려니
이상한 기분이...ㅋ)

모르는 사람한테
이렇게 오랫동안 말 붙이는거
처음이다.
당신이 어떤 인연인지 
좀 알고 싶다.

그랬더니,
이 친구.
'저도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이런다.

그래? 오케이.
며칠 뒤 다시 보자.
일단은 헤어졌다.

며칠 후 수요일.
점심나절에 다시 
그 카페에서 만났다. 

그런데, 
처음 휩싸였던 
기이한 열기가 
며칠이 지나 걷혀진 탓인지

뭔가 헛도는 느낌.
대화를 나눌수록
그 기분이 더 또렷해졌다.
전혀 다른 사이클을 가진,
흔히 말하는 이 바닥
사람이 아닌거 같은...

도무지 
이쪽 세계 밥을 먹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만한
기본적인 지식, 태도 같은게 
전혀 보이질 않는거다.

'그림 그린다 그랬죠?
혹시 그린거 좀 볼수 있나요?'

선뜻 건네보이는 스케치북.
펼쳐봤다. 근데...헐. 
기초적인 인체구조에 대한
무지식을 드러내는 캐릭터그림들.
당연한 명암 방향을 무시한
랜드스케이프와 정물 스케치.
컷 만화를 그렸는데,
그림실력 떨어지는건 둘째치고
스토리와...콘티가...ㅜ.ㅜ

이건 문하생도 아니고
지망생도 아니고
그냥...
정말 그냥...
혼자서 하는 
심심풀이 낙서수준...

짜증이 한줄기
이마 옆으로 피어 오른다.
이거...뭐지, 진짜?

'나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요?'

그래.
그거나 빨리 듣고 가자.

뭔가 용기를 내려는 듯
자세를 다 잡고
헛기침 몇번 하더니...
말을 꺼낸다.

'혹시...정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응? 
뭐? 정성이라니...?

'정성이라는게 뭐냐면, 
우리 다 우리 뜻대로 
사는게 아니잖아요?
이런 저런 이유로...
잘 안풀리고 사는게 힘들고...
근데, 정성을 하늘에 드리고 나면...'

니미..

나한테 뭔가 느낌이 와서
큰 용기내어 소중한 '진리'를  
꼭 전달하고 싶어했던 본인은,
대순진리교 일꾼이란다...

제기랄.

대체 난.
뭘 기다린건가...

그때.
난 그 놈을 노려본게 아니라
난 내 자신을 노려본거다.


'내 삶의 기적을
누가 만들수 있는가?'




프러시안블루  15.01.02 이글의 답글달기

재미있네요
제가 네트워크 공부할때가 생각나기도 하구요

네이버 지식인에 답변을 엄청 정성스레, 그리고 정확히 다는 사람이 있더군요
(무려 네이버 지식인 ... 태양신)
메일을 보내서 밥한번 사고 싶다고 했어요. 공부하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기대를 안했는데 좋다는 연락.
종로 3가에서 오후 6시에 만나서 12시까지 3개의 술집을 돌았나~~
암튼 그뒤로 형, 동생이 되었고 지금도 아주 잘지내고 있습니다
그 친구 정체는 학원에서 네트워크 가르치는 선생이었어요

무아덕회  15.01.02 이글의 답글달기

'네트워크'? 매우 모호하고 의뭉스러운 단어네요. ㅎ

프러시안블루  15.01.04 이글의 답글달기

네트워크 마케팅은 아니구 라우터와 스위치를 다루는 IT분야의 그 네트워크요..ㅎㅎ

무아덕회  15.01.04 이글의 답글달기

아아...IT인프라쪽이군요. 살짝 오해했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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