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은 지나갔으니 │ cinq.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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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뭔가 생활이 단조로운 것 같은 느낌이다. 절박하거나 자극적이거나 스트레스 받는 일도 없다. 바쁘지도 않고, 여유롭고.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하루하루를 차근차근 살아나가니까 뭔가 심심하다. 더 큰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고 더 어렵고 힘든 일이 왜 없지? 이런 의문이 든다. 지금으로서는 그냥, 런닝머신에서 내려오면 원래 좀 걷는 느낌이 드는 거라고. 조금 있으면 적응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뭔가 극적인 일들이 있어왔던 지난 시간들이 대충 정리가 되고, 이제 진짜 내 일상에는 별 일이 없다. 그냥 학교에 가고, 과제를 하고 친구를 만나고 동아리 활동을 한다. 고민할 일도 별로 없다. 교환학생 지원할 준비나 차근차근 하고 있는 중이다. 향후 3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3년 동안은 그냥 별 고민 없이 그렇게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그러려니 왜 이렇게 허전한지. 늘 앞이 보이지 않았었는데, 지금 이 결정이 내 인생을 어떻게 끌고 갈지, 나를 살게 할 지 죽게 할 지 아무 해도 없을 지 아니면 죽을 만큼 힘들 지 사이에서 고민하던 연속이었는데. 지금은 하나의 선택이 인생 전체를 좌우하지는 않는다는 걸 이미 알아서인지, 아니면 그 정도 무게의 선택을 할 일이 없어서인지, 그냥 무료하다. 무료하다는 게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짜릿함에 대한 갈증이랄까. . . 뭐라니, 제발 좀 여유롭게 아무 걱정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게 바로 몇 달 전이면서. 혼자 집에 있어도 얼마든지 과제를 할 수 있고 빗소리를 들어도 기분이 나빠지기는 커녕 세상이 씻겨내려가는 시원함을 느끼고 고민이라고는 친구가 왜 카톡에 답장을 안 하지 밖에 없는 지금의 일상을 그렇게 바라고 바라왔으면서. . . 그냥 주변이 차분해지면서 내 존재감이 흐릿해지는 것 같아 불안해지는 것 같다. 지난 날 동안 적어도 나는 태풍이었는데, 이제는 산들바람이 되어 사람들은 내가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게 된 느낌. 하지만 나는 산들바람의 삶이 더 좋아. 태풍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 . 그냥, 요즘 룸메 언니가 내가 미운 건지 아니면 새로 구한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때문인 건지 살갑게 대해주지도 않고 집에 오면 쓰러지듯 누워서 인사도 제대로 안 해서 기분이 별로 좋질 않은 것 같다. 내가 마음에 안 드나, 이런 생각도 들고. 전에는 되게 나한테 잘해줬는데 지금은 되게 차갑고 쌀쌀맞아서 서글프다. 가장 친한 친구도 자꾸 카카오톡을 씹어서 짜증이 난다. 한 두번이라야지, 보내 놓으면 하루가 다 지나서야 읽고, 읽고도 답장하지 않기 일쑤고. 바쁜가 싶었는데 일주일 넘게 계속 그런다. 며칠 안 보내다가 조금 전에 보냈는데 한 번 답장하더니 또 읽씹. 으 이래서 카카오톡은 싫다. 얼굴이 보여야 말이지. 이번 주에는 과외도 안 한다는데- 남자친구랑은 잘만 놀러다니고 같이 찍은 사진도 페이스북에 올리고 그러면서 내 카톡에는 왜 답장을 안 하는 지 모르겠다. 너무너무너무너무 섭섭하다. 사실 지금 기분이 좀 가라 앉은 건 아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섭섭함 때문인 것 같다. (와, 인정했어!) . . 나한테 좀 더 살갑게 대해줬음 좋겠는데:( 자꾸만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하게 되는 게 별로 좋지 않다. 그래서 이런 사소한 문제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시절이 생각나나보다. 하지만 이 고민들을 뒤로 미룸으로 인해서 내가 잃은 것을 생각해야지. 소통, 관계. 섭섭함으로부터 피어나는 상대방에 대한 바람, 나 또한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바랄 수 있다는 사실. 관계는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는 사실! 그래, 이제 보이는 노력을 조금 해봐야겠다. 친구를 만드는 노력 친구와의 사이를 다지는 노력 남자친구를 만드는 노력 등등. 지금까지는 그냥 되는 대로 살아왔어. 운 좋게도 주변 사람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늘 외로웠던 건, 관계라는 걸 가꾸지 못해서 늘 텃밭이 말라 있었기 때문일 거야. 텃밭을 파랗게 가꿔볼까, 태풍은 지나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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