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슈퍼 │ 일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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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때 나는 아주 작은 원룸에서 엄마 아빠 나 이렇게 세 식구가 함께 살았었어 쥐가 나오기도 했고 풍족하진 못했지만 불행하지는 않았었어 밤에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이불을 눈아래까지 덮어쓰고 함께 판관 포청천을 보다가 작두를 대령하라! 하고 말하면 이불속에 숨어 엄마를 끌어안고는 했지 그러고 나면 왠지 조금은 안심이 되었었어 경제는 호황을 향하고 있었지만 할게 정말 없던 시대였지 주변에 또래가 없던 나는 옥상에서 빨래집게나 자석을 가지고 놀거나 동요를 듣고 혼자 놀았으니까 지금처럼 폰으로 뽀로로를 볼 수 있었다면 그보다는 조금 덜 외롭고 심심했을까? 부모님은 열심히 일하셨고 이사를 오면서 작은 가게를 여셨어 "은혜슈퍼" 두분은 임신하셨을때 내가 딸인줄 아셨고 내가 딸로 태어났다면 내 이름을 은혜로 지으려고 하셨었데 이사를 하면서 주변에 문득 나랑 비슷한 또래 아이들 대여섯명 정도가 근처를 뛰어다니며 놀고있는것이 눈에 보였는데 나도 함께 놀고 싶어서 가슴이 뛰었고 그 아이들을 유심히 지켜봤어 수줍음이 많았던 나는 엄마한테 허락을 받아 골목에 놀고있는 아이들과 과자를 나누어먹고 친구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어 엄마는 과자랑 껌 캬라멜 등을 검은봉투에 가득 담아주셨고 나의 마음은 잔뜩 부풀었어 "나는 얼마전에 여기 이사왔는데 친구가 되고싶어!" "너희들과 같이 놀고싶은데 나도 끼워줄 수 없을까?" 그 아이들은 내가 술래를 하면 끼워주겠다고 했고 나는 눈을 감고 60초를 센 후에 그 아이들을 찾아다녔어 "58..59..60..찾는다!" 그렇게 여기 저기를 이곳 저곳을 아무리 찾아봐도 근처에 그 아이들은 없었어 나의 얼굴은 계속 상기되어갔고 잘 모르는 길을 계속 걷다가 불안함이 끝내 울먹임이 될때 쯤 도로가의 끝에 모여있는 그 아이들을 봤어 검은 봉투에 가득 들어있는 과자를 꺼내먹으며 함께 자기들끼리 웃으며 놀고있는 그 아이들을 나는 끝내 울음을 끆끆 참으면서 집에 돌아와서는 엉엉 울었어 화가 나신 엄마가 그 아이들을 혼내주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하면 정말 그 애들이랑 영영 친구가 될 수 없을것 같아서 그러지 말아달라고 붙잡고 엉엉 울었어 화가나신 엄마는 그 아이들을 못 만나게 했는데 그래서 그 이후에도 여전히 난 혼자서 놀았지 지금 생각해보면 어렸던 나는 꼭 피글렛 같았어 어리숙해 보이는 아이가 수줍어 하면서 먹을것을 들고와서 같이 놀고싶다고 하는데 그게 그렇게 우습고 만만하게 보였던 것일까 야 니들 나랑 놀자 무슨 내가 먹을것도 가져왔는데 내가 술래냐 가위바위보 해서 정해 싫어! 그럼 나 안해! 그랬어야만 했던걸까, 그랬다면 뭔가 달랐을까 5-6살의 기억이지만 또렷하게 남아있어 그 실망감과 울먹임은 후에 내가 사람들을 대하는 데 있어 많은 영향들을 미쳤으리라는 생각이 들거든 여리고 온순한 사람이 못된 사람에게 당하는것을 견딜 수 없어 쉽사리 넘어가지 못하는것도 자신의 모습을 보는것 같은 기분이 드는것도 나의 내향성과 자존감에 대해서 누군가가 이야기를 하다가 프로이드와 아들러 심리학에 관한 책 이야기를 했었는데 원인론과 목적론에 대해 의견들은 다양하고 복잡한데 내가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생각해보기에는 글로 되짚어보는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커서 훨씬 더한 일을 겪은 것 보다도 어린 그 아이의 기억이 강렬하게 느껴지는것은 아이의 시간은 어른의 시간보다도 섬세하고 소중하구나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되네 그리고 난 아직도 피글렛을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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