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 neu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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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박 2일 여름방학 특집을 보았다. 수박을 팔아서 모은 용돈으로 딘딘 어머님께 효도하기 특집이었다. 멤버들이 열심히 모은 돈으로 요리를 해서 대접해드렸는데, 딘딘이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 어머니가 딘딘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서 마음이 뭉클했다. 엄마가 70, 80살 까지 사는 게 아니라 당장 내일이라도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거니까 전화도 자주 하고, 잘 챙기라는 어머님의 말씀에 나도 좀 마음이 이상해졌다. 나는 엄마를 조건부로 용서했었다. 엄마는 나에게 정말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이미 나는 주범인 아빠를 고소해서 사건을 해결해서 마음 속의 응어리가 풀렸고 엄마를 등지는 건 내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안정에 모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그냥 더 이상 그 문제를 꺼내지 않고 넘어가기로, 그리고 그냥 이렇게 적당한 거리를 둔 상태로 살아가기로 결정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엄마에게 진심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 엄마의 감정 따위도 안중에 없었다. 내가 엄마의 잘못을 문제삼지 않고 덮고 넘어가준 것만으로도 나는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 했고 엄마는 내게 아무것도 바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가 뭘 느끼는 지 뭘 원하는 지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엄마는 나를 낳아준 사람, 그리고 같이 사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오늘 엄마랑 마트에 다녀오면서 이야기를 했다. 내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너무 버릇없는 아이들이 많은 것 같다고, 나도 어렸을 때 그렇게 버릇없었냐고 물어보니, 엄마가 아니라고, 너는 어렸을 때 착했다고 했다. 오히려 자기가 나와 내 동생 기를 너무 죽여놓은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솔직히 엄마가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산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걸 오늘 느꼈다. 너네는 착했다고, 가정이 개판인데 비뚤어지지도 않았다고.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동안은 엄마가 자식이라고 우리들한테 아쉬운 소리를 할 때마다 입 밖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늘 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개판인 집안에서 이 정도로 반듯하게 자라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지 무슨 출세를 해서 자기를 호강시켜주기를 바라는 지 모르겠다고. 도대체 그런 생각을 왜 못 하는 거냐고. 근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래도 다른 사람하고 비교해보면 잘나지 않은 자기 팔자가 아쉬웠던 모양이다. 엄마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마음 한 켠에 미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나중에 엄마와 헤어지게 되었을 때 이걸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엄마의 나이는 이제 쉰을 넘기셨다. 늦기 전에 내가 엄마에게 스스로 걸어놓고 있었던 조건을 내려놓고 나의 진심을 느끼고 표현해봐야 하지 않을까. 엄마는 과거에 나를 지켜주지 못했으니까. 나를 제대로 키워주지 못했으니까. 이랬으니까. 저랬으니까. 어쩌면 순간 순간 내게 걸어오는 기대에 대한 부담감을 외면하기 위해 나 편하자고 대는 핑계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미움의 찌꺼기마저 털어내보자. 그리고 다시 관계를 꾸려나가보자. 마치 단 한 번도 상처받은 적 없었던 것처럼.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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