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발전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지는 이유   neuf.
  hit : 1702 , 2020-11-02 13:05 (월)


1. 발전은 하는 데 지각을 못 하는 것이다?


발전이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말하면 운동이고, 운동을 측정하는 방식 중 하나는 '속력'이다.

속력에는 절대적 속력와 상대적 속력이 있으며

기준점을 움직이는 대상으로 잡느냐, 움직이지 않는 대상으로 삼느냐에 따라

속력에 대한 표현과 지각이 달라진다.


지하철에 타고 있을 때 창밖으로 다른 지하철이 같은 속도로 지나가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때는 순간적으로 지하철이 멈춰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두 지하철은 분명 움직이고 있지만,

눈 앞의 지하철이 배경을 가로막았기 때문에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상대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시각적인 정보가 차단되었으며,

두 지하철의 속도가 같기 때문에 내 눈에 들어오는 건너편 지하철의 면적도 같다.

때문에 우리는 속도를 가늠할 수가 없어서

순간적으로 멈춰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이다.

그 지하철이 속력을 올려 더 빨리 지나간다면?

내가 타고 있는 지하철도 충분히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음에도

갑자기 느리게 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또한 당신은 지구가 돈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는가?

지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속도로 돌고 있다.

그런데 한 번이라도 놀이기구 탈 때처럼 어지러움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움직인다는 사실을 그 자체로 지각하는 게 아니라

시각적인 배경의 변화와 청각 기관의 떨림, 촉각 등의 정보를 종합해서 움직임을 지각하기 때문이다.


지구의 자전을 느낄 수는 없다.

하늘에는, 특히 낮 동안에는 태양 이외의 이정표가 없기 때문이며

그 이정표도 우주와 지구의 거대한 크기 때문에 인간이 자각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우주의 움직임을 상대적으로 느리게 지각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일단 내가 발전하는 것 자체와

발전한다고 '느끼는' 것 사이에는 괴리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늘 멈춰 있다고 느끼는 것은

실제로 멈춰 있어서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실제로는 발전하고 있는데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특히 발전의 기준점은 없고

목표점만 있을 때 그렇게 느끼기가 쉽다.

목표를 멀리 잡을 수록 아직 갈 길은 먼 것 같은데

출발점은 보이지 않으니 거리가 줄어드는 것을 '지각'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 것인지

혹은 가고는 있는 것인지

발전하고 있고 변화하고 있는 것인지를 느끼고 싶다면

나는 적절한 인생 계획과 이정표를 세워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속도나 발전을 비교할 때에는

움직이지 않는 것을 (목표, 나의 과거 등) 비교대상으로 잡아야 한다.

외부의 움직이는 대상(다른 사람, 사회적 기준 등)을 비교대상으로 잡아버리면

항상 운동을 상대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나의 속도를 정확히 측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원 준비를 하면서

내년이면 서른인데 나는 남들에 비해 왜 발전이 없는 것 같을까, 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

나는 정말 전혀 발전을 안 했을까?

그건 아닐 것 같다.

물론 객관적으로 속도가 좀 느린 편이긴 하다.

잘 나가는 또래에 비해 사회적인 성취가 낮은 것도 사실이다.


아직 한 분야에서 꾸준히 일해본 경력조차 없으니.

이건 팩트이다.

왜일까?


2. 완벽주의적인 사고 및 행동 방식으로 인한 비효율적인 의사 결정


나는 완벽주의를 갖고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는 좋은 쪽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이 완벽주의 덕분에 많은 일들을 이뤄오기도 했고,,

그치만 부작용이 몇 가지 있어서 몇 년 전부터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고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도 잘 안 되는 부분들이 있다.


1) 완벽하게 끝낼 수 없을 것 같으면 아예 포기해버리는 것


물론 이 기준이 남들보다 높다. 근데 너무 높다는 게 문제다.

누가 봐도 그 정도까지는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진짜로 최상 최상 최상의 기준을 세워놓고 그 정도를 못 할 것 같으면

그냥 안 해버린다. 이것땜에 놓친 기회가 여럿 된다.


2) 남들에게 나의 불완전함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 것


뭔가 내 맘에 들지 않으면 나를 드러내지 않는다거나,

실수할 것 같으면 아예 하지 않거나, 괜찮지 않은데도 괜찮은 척 하는 부분이 있다.

이러한 긴장을 유지하는 데 꽤나 큰 에너지가 들어가고

사람들이 나를 인간적으로 여길 틈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나는 그냥 으레 잘 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또 그 기대에 부응하느라고 잘 지내는 척을 한다.


3) 반대급부로 남에게는 너무 낮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


-내가 스스로에게 엄격하기 때문에 타인에게까지 엄격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래서 남들에게는 사실 그 어떤 기준도 적용하지 않는 편이다.

덕분에 사람들은 나를 편해하기도 하지만,

가끔 내가 너무 요구를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싫은 것을 거절하는 건 잘 하지만,

원하는 것은 잘 요구하지 못하(않)기 때문이다.


4) 결정의 속도가 느린 것***


사실 1-3번은 참을 만 하다. 그러나 이 4번이 제일 문제이다!!!

나는 한 가지 일을 결정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쓴다.

기껏해야 운동화 하나 옷 한 벌 사는 데도 한 달씩 걸리니 말 다했다.

진로 선택 하나 고민하는 데 몇 년 걸린 것도 당연하다.

이건 너무, 너무, 너무 비효율적이다.

물론 뭔가를 신중히 선택하는 버릇이 발달한 배경이 있으나

이제는 낡은 대응 방식이다.

이제 나의 생사를 가르는 결정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나의 결정 하나가 나의 안전과 위험 여부를 달라지게 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되었으므로

조금은 과감하게 결정해도 될 것 같다.


근데 아직은 그게 좀 어렵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연습 중인데, 벌써부터 에너지가 많이 절약되는 것 같아 기쁘다.

얼마 전엔 아주 오랜만에 즉흥적으로 악세서리를 구매해봤다.

지하철역에서 지나가다가 세일을 하는 걸 발견했는데

원래 같았으면 주변 악세사리 점을 모두 돌아보고 와서 샀겠지만

그냥 적당히 마음에 드는 것 몇 개를 구매했다.

사고 보니 그럭저럭 괜찮아서 잘 쓰고 있다.


이렇게 의사 결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연습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은 양궁 유튜브 영상을 보는 중이다.

실내 양궁장을 가는 걸 좋아하는데

활은 쏠 때마다 빠른 의사결정을 하는 데 연습이 돼서 좋기 때문이다.


활을 들어올리고 조준 호흡 참고 슛,

하는 과정들이 리드미컬하게 반복되고

오래 조준하며 할 수록 오히려 조준이 잘 안 돼서 결과가 안 좋기 때문에

그냥 빨리 쏴버리는 연습을 하는 데 매우 좋다.


근데 코로나 때문에 직접 가지는 못 해서 영상을 보는 중이다.

그래도 나름 멘탈 트레이닝이 되는 것 같다.


3. 현실감각의 부족


나는 매우 매우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온실 속 화초로 자란 것도 아니고

사회 생활도 정말 많이 했는데 왜 아직도 이런 지는 모르겠다.

뭐든지 '이래야 하는데'라는 나만의 기준이 확고하다.

실리를 잘 따질 줄도 모르고

세속적인 욕심을 잘 낼 줄도 모른다.

남들 다 아는 세상 물정을 모를 때도 많다.


정의, 인권, 인류 복지,

이런 좋은 가치들도 중요하지만

현실도 보고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정체감이 형성되던 청소년 기에 세상을 글로 배웠기 때문이 아닌가,,조심스럽게 짐작해본다.

나는 학창 시절에 정말 책을 많이 읽었다.

문학부터 시작해서 철학이나 사회과학 서적들을 읽었는데

거기서 나온 사람들은 하나 같이 정의로웠고

이상한 점 투성이인 우리 가족과는 달랐다.


그래서 뭔가 세상에 대한 당위적인 사고가 박힌 것 같다.

비판적인 것과 당위적인 것은 다른데.

'세상은 이래야 하는데 지금은 이렇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며,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은 ~이다.'

라는 사고 방식과

'세상은 이래야 하는데 왜 이래! 인정할 수 없어! 난 내 생각과 다른 건 받아들일 수 없어!'

하는 태도는 분명 다른 것이다.


이 완고하고 고지식한 태도를 좀 버리고

당위적인 세계관과 현실적인 세계관 사이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본다.


이 당위적 사고가 내가 가진 완벽주의의 근원일 수도 있고.

이건 나중에 파볼 일이지만.


무튼 현실적인 관점을 갖는 방법은,,

현실적인 사람들을 곁에 두는 것이다!!

심리학 분야, 사회학 분야 바깥의 분야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봐야지.

코로나 때문에 어려우면 일단 다양한 분야의 기사를 읽는 것부터 시작하자 :)


-


요즘은 내 인생이 조금은 더디게 가는 것 같아 답답하다.

그치만 일단 내가 비교 대상을 너무 높게 잡고 있고,

그 사람들이 너무 빠르게 발전하니까 나는 상대적으로 느린 것 같이 느껴지는 점이 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주변의 기대를 너무 많이 받고 자랐고

성인이 되어서도 크게 될 것 같다,

살아온 인생을 봤을 때 분명 잘 될 것 같다, 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들어서 그런 지

마음 속에는 늘 '왜 그 정도가 안 되는 것 같지?'라는 의문을 품게 되는 것 같다.


일단 주변의 움직이는 것들로 비교대상을 삼아 변화 여부를 측정하지 말고

내가 출발한 지점과 가려는 지점 간의 거리를 기준으로 지각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중간 중간 작은 이정표들을 세워놓고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새로운 진로로 접어들었으니 그 작업을 꼭 한 번은 하고 넘어가야겠다.

그리고 완벽주의로 인해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하는 버릇을 올 해에는 꼭 고치고 넘어가야겠다!


스스로에 대한 기준을 낮추기

새로운 진로에서의 이정표 세우기

의사 결정의 효율성과 결정 속도 높이기

경제 관련 기사 주기적으로 읽기


올해가 가기 전에 이 작업을 하고 넘어가야겠다.

일단 내가 생각했을 때 지난 날들에서 부족했다고 느끼는 점이고

앞으로 더 발전하려면 개선해야 된다고 가정한 부분이다.

이 부분들을 개선해보고 결과가 어떻게 되는 지 한 번 봐야겠다 :)


-



나는 이제 성폭행 트라우마를 치유하던 하나가 아니다.

이제는 다 벗어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시간이 된 지도 꽤 되었다.


남들이 진로 고민할 시간에 치유하느라고 미처 고민하지 못했던 걸 이제와 하느라

이런저런 눈치도 보이고 고민도 많지만

어쨌든 지금이라도 하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남들보단 느리지만 내 인생을 기준으로 본다면 나는 진짜 빠르게 가고 있다.

내가 20대가 가기 전에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서

말끔한 정신으로 진로 고민을 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제발 낡은 사고 방식과 껍질에서 벗어나서 성큼성큼 나아가자!

새살 돋은 지 오래다~~~





볼빨간  20.11.10 이글의 답글달기

읽으며 20-30대를 돌아보게 되네요.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요.
일직선으로 보면 긴 시간인 우리 삶에서 모두가 발전적인 시간을 갖겠지만
중요한 건 일(직업), 여가(휴식과 취미), 개인(나)적인 면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고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나씨 일기를 읽으면 생각이 정리되어 참 좋아요 ^^
원하는 대로 나아가는 시간되시길 바래요.

李하나  20.11.23 이글의 답글달기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맞아요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면 마치 비행기가 양력을 잃듯 기우뚱, 추진력을 잃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고 만족가을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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