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마음은 왜 있는 걸까?   공개
  hit : 2744 , 2009-06-30 19:00 (화)
 

몸에서 나간 길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언제 나갔는데 벌써 내 주소를 잊었는가 잃었는가
그 길 따라 함께 떠난 더운 사랑들
그러니까 내 몸은 그대 안에 들지 못했더랬구나
내 마음 그러니까 그대 몸 껴안지 못했더랬었구나
그대에게 가는 길에 철철 석유 뿌려놓고
내가 붙여냈던 불길들 그 불의 길들
그러니까 다 다른 곳으로 달려갔더랬구나 
연기만 그러니까 매캐했던 것이구나
           

                           - 내 마음의 지도 (이문재) -


이 시인 식으로 말하자면, '마음'은 '몸에서 나간 길들'이 되겠네요.
그래서 '내 마음'은 곧 '내 몸'의 연장인 셈이구요.
누군가에게 몸을 대신해 갈 수 있는 길...

그러한 길을 만들게 하는 힘은 '그리움'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거미로 하여금 저 거미줄을 만들게 하는
힘은 그리움이다
거미로 하여금 거미줄을 몸 밖
바람의 갈피 속으로 내밀게 하는 힘은 이미
기다림을 넘어선 미움이다 하지만
그 증오는 잘 정리되어 있는 것이어서
고요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팽팽하지 않은 기다림은 벌써
그 기다림에 진 것, 져버리고 만 것

터질 듯한 적막이다
나는 너를 잘 알고있다
  
                      - 거미줄 -


내 안의 또다른 나였던 마음들
아침은 멀리 있고
나는 내가 그립다
                       
- 마음의 오지 中 -

나의 마음은 또다른 내가 아닐런지요.
"마음은 혹은 몸은 왜 있는 걸까" 라는 물음은
결국 "나는 왜 있는 걸까" 와 같은 질문 아닐까요...

 - 못났을 망정 그런 나를  나라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픈  一人.



                           


 
프러시안블루_Opened  09.06.30 이글의 답글달기

이문재 시인은 산문(정확히는 "내가 만난 시와 시인")을 통해 먼저 만났다가,
다른 이들이 엮은 선집을 통해 시 몇편을 접했을뿐인데요
꼼꼼히 읽어보니 참 좋네요.
(전 시를 좋아하긴 하지만 편식증이 있습니다...ㅎㅎ)

그대에게 가는 길에 철철 석유 뿌려놓고
내가 붙여냈던 불길들 그 불의 길들

팽팽하지 않은 기다림은 벌써 그 기다림에 진 것

같은 구절은 참 절창입니다.

좋은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종종..좋은 시 올려주세요.

프러시안블루_Opened  09.06.30 이글의 답글달기

불길들 그 불의 길들....

티아레  09.06.30 이글의 답글달기

다시 보니 이 구절 다음 부분을 실수로 빠뜨렸네요.
수정해서 全文을 다시 올렸어요^^

저는 아는 시가 많지는 안답니다.
언젠가 읽었던 시들이 어떤 상황에서
문득 다시 떠오를 때가 있잖아요.
그렇게 다시 뒤적이며 해후하게 되는거죠...

억지웃음  09.06.30 이글의 답글달기

시 감사해요 잘 보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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