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책읽기  
  hit : 2787 , 2010-03-29 09:02 (월)

주말에 <밑줄긋는 여자 -성수선, 웅진윙스- >라는 북에세이를 읽는데
김훈이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했다는 말이 인용되어 있다.

최근 <넛지>를 읽으며, 많은 책을 읽기보다는 몇권의 양서를 몸에 익히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다(혹은 올바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내 생각과 김훈이 했다는 말의 맥락이 비슷해서 김훈 인터뷰를 다시 찾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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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사람들이 책을 읽으라, 책을 읽으라 하잖아요. 그게 틀린 말은 아닌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근사록>이라는 책을 보면
‘공자의 논어를 읽어서, 읽기 전과 읽은
후나 그 인간이 똑같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는 없다.
’ 라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러니 다독이냐 정독이냐, 일 년에 몇 권을 읽느냐, 이런 것은 별 의미 없는 것이지요.

책을 읽는다는 것보다도 그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서 나 자신을 어떻게 개조시키느냐는 게
훨씬 더 중요한 문제죠. 책에 의해서 자기 생각이 바뀌거나 개조될 수 없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 없는 거죠.

책은, 우리가 모든 세상과 직접 관계해서 터득하고 경험의 결과를 얻기는 어렵기 때문에,
그 보조적인 수단으로 필요한 것이에요. 세상을 아는 여러 가지 수단 중 하나인 것이지요.

책 속에 길이 있다고들 그러는데, 내가 보니까 책 속에는 길이 없어요.
길은 세상에 있는 것이지. 그러니까 책을 읽더라도, 책 속에 있다는 그 길을 세상의 길과
연결을 시켜서, 책 속의 길을 세상의 길로 뻗어 나오게끔 하지 않는다면 그 독서는 무의미한
거라고 생각해요. (......)


앞으로는 자꾸 새 것을 읽지를 말고 옛날에 읽은 책을 다시 읽으려고 그래요.
<장자>, <논어>, <사기> 같은 것을 다시 읽어야 해요.
왜냐하면 내가 여생이 얼마 안 남았잖아.
새 책을 따라가기보다는 고전을 읽으려고 해요.
                                           
                         -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김훈>편에서 -

티아레  10.04.12 이글의 답글달기


저도 전에 지식인의 서재에서 이글을 읽었는데
김훈은 책을 대하는 태도 역시도 몹시 엄격하구나 싶었어요.

블루님이 말한 "많은 책을 읽기보다는 몇권의 양서를 몸에 익히는 것의
유익성"에 대해서는 저도 공감해요.

오늘 이동진의 서재를 둘러봤는데 책에 대한 그의 생각이 저와 상당히 비슷해요.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책을 시험 공부하듯 읽지 않는 이상, 책을 덮고 한 달만
지나면 읽은 내용의 80%는 기억하지 못할 거예요. 한때는 분명히 책을 열심히
완독했는데 나중에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책도 사람의 인연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매일 만나는데도 내 인생에서 덜 중요한 사람도 있고, 10년간 지나가면서
두 번쯤 만났는데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도 있거든요. 책과도 이런 인연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거움과 영감 때문에 봅니다. 책 읽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가장 큰 즐거움이자 오락이에요. 제가 책을 읽을 때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욕조에요. 욕조에 물을 완전히 채우고 누워 머리와 팔만
내놓고 책을 보거든요. 이 자세로 세 시간도 봐요. 저 나름의 오락이에요.

영감이 왜 필요한가 하면, 제가 글을 쓰고 책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필요해요.
책을 쓸 때는 제가 느낀 것, 생각한 것, 경험한 것을 다 종합해 전인적으로,
총체적으로 쓰게 되는데, 그 연원이 어딘지 모를 경우가 많지만 상당 부분은
제가 읽는 데서 왔다고 생각해요.

릴케가 쓴 <말테의 수기>를 보면, 시는 사람들이 생각하듯 감정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 쓴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렇다고 막 경험했다고 시를 쓸
수는 없는 거래요. 경험이 숙성되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러다 어느 순간,
시가 올라오게 되는 거에요. 몸 깊은 곳에서.

마찬가지일 텐데, 어떤 글이든 영감이란 게 필요하거든요. 영감은 경험에서
오는 것인데, 직접 경험에는 한계가 있으니 가장 효과적인 경험은 독서일 거에요.
그런데 독서를 해도 나중에 기억이 잘 안 나거든요. 하지만 그 독서가 제대로 된
것이었다면, 비유하자면, 그렇게 읽어낸 텍스트가 파편처럼이라도 몸 속을
떠다닐 거에요. 세월이 지나게 되면 어떤 것은 가라앉아서 영영 기억 못하게
되더라도, 또 어떤 독서 체험은 외부에서 주어진 자극과 만나 스파크가 이는
순간을 만들어내거든요. 제가 볼 때, 그런 게 영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도
저한테 책이 무척 중요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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