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 삶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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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는 하나의 제목아래 이질적인 이야기를 배치하여 그 울림을 풍부하게 하는데 능하다. 쇄락해가는 고향과 조선말 화가 최북을 배치시키는 능란함을 보라. 그러나 그의 울림은 기교에 기대지 않고, 멀어져가는 자신의 청춘을 바라보는 애뜻함과 자기 고백의 진정성에 의지한다. 그 점이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다른 점인데, 꼰대 아니랄까봐 자꾸 가르치려드는 김난도의 글에 비해 김연수의 글은 술자리에서 있잖아~~하고 친구에게 털어놓은 넋두리 같다 그래서 우리가 술자리에서 오바하듯 감성이 넘치기도 하지만, 그것없이 어떻게 청춘을 바라볼 수 있단 말인가? 고향은 택시의 미터기가 소용 없는 곳이었다. 시내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기본요금으로 그 어디든 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도시였다. 나는 가게가 있던 그 거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반 아이들 이름을 모두 외우듯 나는 그 거리의 집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 거리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재건된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몇십 년을 이어져왔다. 그러던 게 1990년대 접어들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작은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체인점이나 대리점이 그 자리를 메워나가기 시작했다. 제과점을 하던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 즈음 점점 손님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그 세월 동안 나는 자라 청년이 됐는데 가게나 그 거리는 몰락하기 시작한 셈이다. 그 무렵, 커피를 마시며 창 밖을 바라보면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형제는 크라운베이커리나 파리크라상 같은 체인점으로 바꿔야만 가게가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건 하나마나한 얘기였다. 왜냐하면 그럴 만한 돈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 즈음 창 밖을 내다보면 뭔가 지나가는 게 언뜻언뜻 눈에 보였다. 바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이었다. 우리 가게 옆집이었던 남경반점이 ‘야래향’으로 바뀐 것도 그 즈음의 일이었다. 장개석의 사진과 대만의 풍광을 담은 달력이 걸려 있던 남경반점은 중국인 진씨가 운영하던 가게였다. 박정희 정권 아래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남경반점은 꿋꿋이 버텨나갔다. 진씨에게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가 있었는데, 둘 다 대륙 기질이었는지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키가 커서 어딜 가더라도 눈에 띄는 아이들이었다. 진씨는 그 아이들을 타이뻬이에 유학 보냈는데 남경반점에서 번 돈 대부분을 써버렸다. 그 거리의 오래된 가게들처럼 남경반점도 점점 허술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남경반점이 사라지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타이뻬이로 유학 갔던 아들이 돌아왔다. 이미 세상을 떠난 진씨는 대만에 정착시키고 싶었던 아들이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대만의 대학교까지 졸업한 그 아들이 자기처럼 중국집을 하리라고는. 이윽고 남경반점 간판이 내려지고 ‘야래향’이라는 네온사인 간판이 올라갔다. 야래향은 그 거리에서 보기 드문 중국집이었다. 호화스러운 실내 장식에 자장면 가격이 다른 중국집의 두 배였다. 나는 그게 도통 진씨 아들의 오기처럼 보였다. 그것은 위태위태한 오기였다. 그리 고 야래향은 침몰하는 대형 선박처럼,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아주 천천히 몰락해갔다. 그 거리에 살았던 사람으로, 그리고 진씨의 아들 딸과 이웃으로 지낸 사람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일은 아주 괴로운 일이었다. 온갖 수수께끼로 점철된 최북의 일생은 역시 수수께끼로 끝났다. 어떤 사람은 그가 서울의 어느 여관에서 죽었지만 그게 언제인지는 알지 못하겠다고 말하지만 동시대 사람 신광하는 그가 어느 겨울 술이 취해 돌아오다가 잠든 채 폭설에 묻혀 죽었다고 남겼다. 이에 신광하는 ‘君不見 崔北雪中死(군불견 최북설중사 :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최북이 눈 속에서 죽은 것을)’로 시작하는 유명한 「최북가(崔北歌)」를 썼다. 담비가죽 옷에 백마를 탄 이는 뉘 집 자손이더냐
평균적인 한국 남자라면 다 알 테지만, 어쨌든 입영통지서를 받게 되면 삶은 애매해질 수밖에 없다. 도서관 건물을 지었다면 그 다음에는 책을 채워 넣어야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입영통지서의 가장 큰 기능은 거기에 있으니까. 예컨대 인간미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그 종이쪼가리에 돌아오는 12월 쯤 입대하는 것으로 돼 있다면 그때까지는 어떤 계획도 세울 수 없다. 뭐, 총검술이라도 미리 연습한다면 좋은 계획이 될 듯도 하지만, 그런 인간이 있을 리 만무하다. 세상이 종말을 맞이하는 걸 지켜보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는 실연하면서 이미 알게 됐지만, 그게 또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는 입영통지서를 받아보고야 알게 됐다. 새 양말 한 짝도 살 수 없는 처지라니! 해서 군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에게서는 달관의 풍모가 느껴진다. 뭘 열심히 파고든다고 해도 입대하면 말짱 헛수고라는 걸 알기 때문에 무엇에도 열중하지 못한다. 입영통지서를 받는 순간, 그들은 민간인의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으나 입대하기 전까지는 군인이 될 수도 없는 몸이므로. 군복이라도 미리 택배로 받을 수 있다면 다림질이라도 해놓으련만. 내 개인적 경험으로 보자면, 그런 인간들, 그러니까 지금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조금의 계획도 세울 수 없는 처지가 된 인간들이 열중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뿐이다. 바로 음주와 연애와 여행이다. 매달 계좌에서 종신보험료가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샐러리맨들이 마음 놓고 하지 못하는 세 가지이기도 하다. - 14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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