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까지 지독하리만치 감정을 억압하면서 살았다.
나쁜 감정이라면 특히 더욱 더. 한 때는 좋은 감정마저 억압하며 살았었지만 많은 노력 끝에 이제 좋은 감정은 억압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나쁜 감정은 마치 침처럼 입 안을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몸 속으로 밀어넣어진다.
그렇다, 나에게 나쁜 감정은 침과 같은 것. 언제나 내 입 속에 마르지 않고 존재하며 끊임없이 솟아나오지만 흘러내리지 않도록 새어나오지 않도록 꿀꺽 삼켜버리는 침과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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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한 것 섭섭한 것 원망스러운 것 화나는 것 실망스러운 것 싫은 것 기분 나쁜 것
어쨌거나 저쨌거나 상대에게 표현했을 때 말싸움을 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주제 상대가 기분이 나쁠만한 주제는 표현하지 않는다. 나에게 뭐라고 할 것 같고 화낼 것 같고 그러면 짜증나고 기분 상하고 나를 싫어해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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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의 관계방식에서 비롯된 것 같다.
하, 참나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이 놈의 인간관계의 원형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하긴 원료의 성질을 어떻게 벗을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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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도 화를 표현하고 싶다. 화나면 화난다고 얘기하고 싶고 싫은 건 싫다고 애기하고 싶고 섭섭한 건 섭섭하다고 기분 나쁜 건 기분 나쁘다고 서운한 건 서운하다고 네가 기분이 나쁜 것쯤 뭐 어때. 나도 기분 나빴다고.
내가 기분 나빴는데 네 기분이 뭐 어쨌다고. 내가 상처 받았는데 네 상처가 뭐 어쨌다고. 내가 아픈데 너 아픈 거 뭐 어쨌다고. 내 인생이 망가졌는데 네 인생 망가지는 거 뭐 어쨌다고.
왜 항상 나만 힘들어야 되는데? 너는 항상 모든 걸 회피하고 모든 걸 너 좋을대로만 하고 너 행복할 길만 찾아서 잘만 사는데 왜 나만 이래야 되는데? 왜 나만 널 봐줘야 되냐고.
나쁜 건 너야. 네가 나쁜 새낀 거야. 네가 개새끼인거고. 네가 죽어야되는 거고 네가 힘들어야 되는 거고 네가 불행해야 되는 거고 네가 아파야 되는 거고 네가 상처받아야 되는 거고 네가 죗값을 치러야 되는 거야.
내가 아니라 너야.
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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