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설 │ deux.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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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다. 어제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등록금을 해주겠다고. 추석 때 같이 내려가자고. 나는 정말 정말 아빠를 만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돈을 받으면 한결 살기가 나아질 것 같다. 그래서 Deal을 하기로 했다. 나 자신과. 그리고 아버지와. 눈 딱 감고 내려갔다 오자. 그리고 대출받은 거 돈 받고. 그리고 다시 원래 자리로. 아 근데 잘 모르겠다. 돈을 받는 게 현명한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벌어서 살고 인연을 끊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 내일 또 같이 내려가는 길에 가식을 떨어야 할 텐데. 나는 그것도 싫다. 왜 항상 아버지가 우위에 있는 걸까. 모든 잘못은 아버지가 한 건데 왜 나는 항상 비위를 맞추고 없던 일인 척 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이것부터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관계의 구조가 내가 건강한 권리의식을 갖는 것을 방해하고 세상 일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는 것을 방해하고 화를 낼 줄 모르게 한다. 누가 나에게 피해를 입혀도 나는 항상 그러려니 한다. 오빠한테 서운한 게 있어도 나는 그냥 참는다. 엄마에게 서운한 게 있어도 나는 그냥 참는다. 세상에 서운한 게 있어도 나는 참는다. 왜냐하면 내가 그런 것들을 바랄만큼 가치가 있다고 느끼지 못하니까. 머리로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것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물론 머리도 모르는 것보다는 백만 배 낫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인데. 나에게는 마음으로 그것을 느낄 경험이 부족하다. . . 마음의 심연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성폭행 심리 치료가 간절하다. 사실 이것없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 같다. 한 차례도 아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다. 아버지에 의해 십 수년이다. 도저히 내가 안고 살 수 있는 상처가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가끔 그것을 잊는다. 그리고 나는 왜 다른 사람들과 이렇게 다를까. 이렇게 부족할까 고민한다. 멍청한 고민이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그리고 그게 당연한 거다. 이미 식은 나와 있다. 연산자도 나와 있다. 항도 정해져 있다. 나는 식의 구조에 맞춰 연산자의 규칙대로 항들을 계산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답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따금 하나의 항을 잊어먹어버리니 답을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 . 왜 나는 오빠가 표현해주지 않으면 나를 좋아하지 않는지 의심하는지. 내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는 지. 왜 이렇게 상대방을 신뢰하지 못하고 밀어내기만 하는지. 방어하는지. 왜 자꾸 남자친구랑 통화할 때 아버지랑 통화할 때의 느낌이 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내가 왜 이러는지 왜 사랑 하나 제대로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렇게 고민하지만 사실 답은 나와 있다. 당연한 거다. . . 아 그런데 왜 잘 안되는지 모르겠다. 그냥 없던 일인셈 치고 싶나보다. 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그 일로부터 입은 피해 같은 거 잊어버리고 그냥 살고 싶은가보다. 그런데 사실 그건 안 되는 거다. 알고 있는데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 행복할 수 있는 방법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데 그걸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 자신과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직무유기다. . . 언제나 알고는 있다. 그렇게 해야겠다 생각은 한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끈질기다. 붙잡고 늘어지면 언젠가는 되리라 믿는다. 성폭행 심리 치료도 마찬가지다. 이미 1년 째 끌어오고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1년이나 시간을 투자했다. 성공할 날이 1년만큼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고 하고 싶어하니까. 그렇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나는 언젠가 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열심히 노력하자. 더 빨리 할 수록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시간들이 늘어나는 법이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거니까. 응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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