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다   deux.
  hit : 2390 , 2012-10-02 00:45 (화)


내가 싫다
오빠와 개천절 날 만나서 
어디서 뭐하고 놀 건지 이야기하는데
별로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없는
내가 싫다.


오빠가 곤란해하는 것 같다.
자기랑 놀기 싫어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늘 피곤하고 귀찮은 모습만 보여서
미안하기도 하다.


.
.




그런데 내가 원래 그렇다.
어디 그렇게 막 놀러다니는 스타일이 아니다.
오히려 잘 안 다니는 스타일.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해서
가고 싶은 곳이 막 생길리는 없다.
나는 그냥 보고 싶을 뿐이다.
특별한 걸 할 필요는 없다.


그냥 
보고싶은 마음 뿐.



.
.



뭐 그런데
오빠도 딱히 가고 싶어하는 곳은 없다.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다.
나랑 똑같다.
그렇다고 내가 뭐 기분이 나쁘다거나 하지는 않다.



.
.



왠지 여자가 이런 건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줘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떻게 보면 남자가 리드해주는 것도 좋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냥
둘 중 아무나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하면 되는 것이다.




.
.



나는 지나치게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주의인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나다.
나는 언제나 그랬다.
친구들이 내가 사는 곳으로 놀러온대도
'그래 와라'
그리고 동네 구경을 시켜준대놓고는
'어디 갈거야?'
하고 물어보면
'아무데나.'
라고 이야기하곤
그냥 뱅글뱅글 돌다가 찜질방에나 들어가곤 했다.



.
.



원래 잘 돌아다니지 않는 성격이고
잘 놀지도 않는 성격이다.
그냥 가끔씩 친구들이랑
집 근처에서 만나기나 하지
어디 멀리 가서 논 적도 별로 없고
그래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잘 모르고
별로 가고 싶은 곳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가끔 가고 싶은 곳이 생기지만
그곳은 내가 혼자 가보고 싶을 뿐
같이 가보고 싶은 사람은 없다.



미안해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냥 이게 나인 듯.
창피해 할 필요도 없고.


응응.
그냥 이게 나인 듯.


한창 놀 때인 대학교 1학년 때는
주말 아르바이트에 
학교 생활에 
학교 친구들과 학교 근처에서는 자주 놀았지만
어디 멀리 간 적은 없었다.
그리고 2학년이 될 나이에는
학교를 잠시 쉬고 일만 했었다.



친구도 하나도 만나지 않고
연락도 끊고.
그런 생활을 나는 내심 창피하게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친구들이 많고
늘 하루 하루가 다르고
어디든지 놀러 다니는 생활을 동경해왔던 것 같다.

틈 나면 친구들 만나는
오빠가 부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은
'돈이 없으니까'
라고 위로했는데
이제는 돈도 생겼다.
다만 돈과 여유가 생긴 게 하도 오랜만이라서
놀아본 지가 하도 오래되서
아직도 놀려면 뭔가 불안하다.


하지만 놀고 싶은 마음도 있다.
조금 적응이 되면 괜찮아지겠지.
친구들이랑 놀다보면
자연스럽게 오빠랑도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생기고
그렇겠지.
지금은 그냥 나는 아무하고도 뭘 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그냥 지금 재수하고 있는 친구하고 
여행이나 한 번 같이 하고 싶은 정도? 

.
.



이게 원래 나인데
나는 조금은 이런 나의 모습이
창피하고 자신 없나보다.

그래서 잠깐 오빠가 
엄마와 이야기하려 전화를 끊은 사이에
울다에 적어내려 본다.


찌질한 일기.
하지만 이렇게 하면 마음이 조금 달래지기에.




.
.





롯데월드를 가자고 한다.
딱히 신나지도 않고
그냥 그렇다.

오빠 만난 지도 오래됐고
딱히 누구랑 나가서 논 것도 오래됐고.
그래서 그런 것,
같은데.

아무튼 지금 내가 걱정하는 건
'오빠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다.



하여튼.
다른 사람들한테는 자존감이 어느 정도씩 생긴 것 같은데
오빠 앞에만 서면 
자존감이 현저히 낮아진다.
에휴





아무튼.
중요한 건
전혀 미안해하거나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는 점.
이건 서로 사이에 무례하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아주 단순한 거야.
그냥 나는 지금 마땅히 가고 싶은 곳이 생각나지 않는 것뿐.
아는 곳이 별로 없으니까.
그냥 나는 늘 내가 사는 동네에만 있으니까.
그것 뿐이야.

오빠랑 놀면 항상 서울까지 나가니까.
오빠는 서울이랑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서
자주자주 다녀서 이곳저곳 아는 지 몰라도
나는 아는 곳이라고는 여기밖에 없으니까.
응응
그런 거야.
조금 다른 거야.



.
.



나는 뭐 어디 돈 쓰는 데 가지 않아도
어디 가서 앉아서 이야기하고 그런 게 좋은데.
그렇게 아무 곳에서나 만나서 앉아서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할 이야기가 그리 많지 않은 것 뿐이고. 





가끔 이렇게 
별 것 아닌 걸로 많이 많이 불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다.
응응
그런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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