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 │ deux.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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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놈이고 저 놈이고 다 짜증난다. 지금 이 상황도 짜증나고 내 자신도 짜증난다. 그냥 다 싫다. 욕이나 실컷 하고 싶다. 씨팔 저팔 하면서. 등록금을 갚아준다고 으름장을 놓던 아버지는 내가 문자를 연신 보내고 답장도 없고 연락도 없다. 도무지 약속이라고는 지킬 줄 모르는 인간이다.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 아 싫다 싫어. 스트레스 받는다. 내 힘든 일에 대해서는 이해하지도 못하고 공감하지도 못하면서 알고 싶어만 하는 오빠도 짜증난다. 내가 왜 설명하고 이해시켜가면서 힘들어야 하는가. 나 혼자 겪어내기에도 힘이든데. 그냥 나를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너한테 말해도 너는 모르잖아. 그냥 힘내라는 말밖에 안 하잖아. 아니 못하잖아. 알아, 안다고. 이해하기 힘들고 공감하기 힘든 거. 당연하지, 겪어보질 않았으니. 그게 네 잘못인 건 아니야. 내가 나 힘들다고 유세통 부리는 것도 아니야. 그런데 나는 힘드니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게 부담스러우니까 내가 힘들어할 때는 그냥 나를 혼자 내버려둬줬으면 좋겠어. 알고 싶니? 내가 말해줬으면 좋겠니? 그래 그건 고마워. 내가 너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을 기분 나빠 해주는 거 알고 싶어 해주는 거 관심 가져주는 거 고마워. 하지만 부담스러워. 나는 너에게 기댈 수 없어. 의지가 안 돼. 너는 좋을 더 좋은 사람이지만 내가 힘들 땐 부담스러운 존재야. 어쩌면 내가 아직 누군가를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됐는지도 모르겠다. 해결해야 할 나의 문제가 아직 산더미라서 다른 사람까지 안고 갈 수 있는 여력이 안 되는 건가봐. 내가 괜한 욕심 부렸나봐.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사실 그 때는 일이 이렇게까지 될 거라고는 생각을 안 했으니까.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어. 그런데 막상 이렇게 휴학하게 되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고 아버지는 노상 거짓말에 엄마는 나한테 투정만 부리고 아 씨발 나도 이젠 짜증나고 미치겠어. 도대체 왜 나는 다른 사람 때문에 맨날 이렇게 혼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거지? 나는 하나 잘못한 것도 없는데. 아버지는 왜 맨날 내 인생을 방해하기만 하냔 말이야. . . 이 놈이고 저 놈이고 다 짜증나.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해야 되는데. 아 진짜 그냥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싶다. 아무하고도 안 엮이고 그냥 살고 싶어. 키위 속을 긁어내듯 내 껍질만 남기고 속이란 속은 다 긁어내고 텅 빈 그 상태에서 그냥 부유하고 싶다. 아 씨발 짜증나 아아아아아아아 . . 뻔뻔한 사람들이 싫다. 아니 뻔뻔한 아버지가 싫다. 그리고 거기에 대고 제대로 화 한 번 못내는 나도 싫다. 화 내고 싶다. 욕하고 싶다. 니 새끼 문에 나는 날마다 이렇게 불행하다고. 사랑 하나 제대로 못한다고. 좋아하는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나누고 싶지만 내 안의 어둠과 지금의 상황,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나로 하여금 그렇게 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 니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그런데 너는 뭐가 잘 나서 나한테 그렇게 맨날 거짓말인데? 뭐가 잘 나서 나한테 그렇게 바라는 게 많은데? 잘못을 했으면 설설 기고 나한테 속죄하는 마음으로 노력해야 되는 거 아니야? 뻔뻔한 새끼. 자기 죄도 모르는 새끼. . . 강한 사람이 옳은 게 아니라 옳은 사람이 옳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너는 틀렸다. 네가 다 잘못했어. 너 때문에 나는 지금 힘들다고. 너도 힘들어봐 새끼야. 가만 안 둘 거야. 너도 내가 겪은 것만큼 불행해봐. 내가 7살 때부터 짊어진 걸 너도 한 번 어디 짊어져봐. 네가 한 짓 낱낱이 밝히고 네 죄도 밝히고 너한테 당당히 화내고 나는 사과 받을 거니까. 네가 잘못했어. 너는 미쳤었고 더러웠었고 추악했었어. 그러면서 너는 입 싹 닦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개새끼. . . 짜증난다 짜증이 난다. 병맛 같이 살고 있다는 게 슬프다. 이런 스트레스 문에 오빠를 멀리하고 있다. 사실 오빠도 짜증난다. 내가 혼자 있고 싶을 혼자 좀 내버려뒀으면 좋겠는데 맨날 연락하라고 하고 연락 안 하면 왜 연락 안 했냐고 하고 자꾸 자꾸 카톡에 전화에. 귀찮다. 부담스럽다. 그리고 질렸다. 그리고 나빴다. 나는 자주 좀 봤으면 좋겠는데 언제나 바빠 바빠 바빠. 자주 못 보는 걸 별로 아쉬워도 안 해. 그냥 저냥 내가 오빠의 다른 여러가지 생활 중 하나일 뿐인가 보다. 그런 느낌이 싫다. 나는 오빠를 만나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도 정말 일요일만큼은 쉴 수 있는 걸로 고르느라고 스트레스 엄청 많이 받았는데. 친구들이랑 약속도 되도록 주말 이틀은 다 안 잡도록 하고 언제나 오빠를 만날 시간을 비워두고 있는데 오빠는 그렇지 않다. 다른 일이 있으면 나를 안 만나고서라도 다른 일을 한다. 나는 그게 싫다. 내가 뒷전인 것. 그리고 나는 오빠가 불편하다. 대화도 잘 안 통하고 관심사도 비슷하지 않다. 다른 종류의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보완해줄 점도 많고 알아가는 의미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힘든 상황에서의 차이는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나는 지금 '조율'할 만한 마음의 힘이 남아 있지 않다. 언제나 우울하다. 언제나 기분이 좋지 않다.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이다. 성폭행 심리 치료도 받아야 하고 아빠와 등록금 담판도 지어야 하고 엄마와 이야기를 해서 학교 문제도 일단락 지어야 한다. 날마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고민들을 하면서 가끔은 기분이 한없이 다운되기도 한다. 그런 때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에게 기대는데 오빠는 그게 서운한가 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오빠에게 이야기하는 건 내 속을 털어놓는다는 느낌보다는 뭔가 의무감이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남자친구이니까 말하는 것이 예의다, 라고 생각해서 '설명'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 뿐이다. 속을 털어놓지는 못한다. 말하면 당황하거나 곤란해하거나 힘내라거나 이해 못하겠다거나, 그럴 뿐인 걸. 아주 정상적인 가정과 좋은 환경에서 굴곡 없이 자란 오빠가 나를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오빠는 나를 이해해주려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안다. 힘이 되어 주고 싶어하는 것도 안다.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그런데 나는 그 차이를 좁힐만한 여력이 없다, 지금. 이해하게끔 만들어줄 힘도 없다. 그냥 좀 혼자 있고 싶다. . . 화가 난다. 짜증이 난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씨발 그냥 다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 다들. 복수할 거야. 똑같이 힘들게 해줄 거야. 너 때문이니까.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으니까 네가 다시 다 돌려받아야 돼. 나만큼 힘들어야 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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