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시골에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오랜만에 보는 동생이지만,
나는 드라마에 한 눈이 팔리고 말았다.
동생이라도 사랑하면 안 된다고
내 안의 누군가가 나를 말린다.
저 아이도
내 편이 아니라고.
괘씸하다고.
.
.
그리고 다음 순간에
바로 가슴이 아려온다.
그래도 난 저 아이가 좋다.
저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고
절대로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여나 나의 이런 차가운 태도가
저 아이를 상처받게 한다면
나는 정말 정말 슬플 것이다.
더 사랑해주고 싶은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지를 않는다.
.
.
이렇게 느끼는 나를 보면서
나도 참 별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 하나 미워하지도 못 하는 문딩이다.
동생은 모든 걸 알고,
목격까지 했으면서도
엄마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가 이야기하지 않은 것을
동생이 이야기할 수 있었을 리는 없지만,
그래,
그래도 적어도 내 앞에서
아버지가 불쌍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제 엄마를 그렇게 닮았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그런 말을 한다.
아버지는 표 나게 늙어가고 있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고
오히려 잘 사는 것처럼 보여서 그런 걸까.
사실 동생 앞에서 힘든 모습을 보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동생 앞에서 나는 언제나
힘차게 살았고
자신감 있게 살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감각이 무뎌진 걸까.
어찌되었든,
동생도 내 편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아이가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에는 어머니와 동생을 사랑하고 싶다.
그 둘을 미워하고 싶지는 않고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다.
이런 나는
바보인 것이 아니다.
미운 사람 마저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내가 만약
엄마와 동생을 정말로 미워했다면
나는 정말로 슬퍼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들이 좋다.
이런 나는 이상한 것도 아니고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아직,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눈물 겨운 희망인 것이다.
풀기 전에는 사랑하고 싶지 않다.
아니, 내 사랑을 주고 싶지가 않다.
이것은 내 마지막 자존심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풀리고 난 다음에는
마음껏 사랑해주고 싶다.
나는 언제나 그들을 사랑했다.
내 동생이어줘서 고맙고
내 엄마여서 고맙다.
서운하고 섭섭하고
그걸 표현하고 사과를 받고 싶다.
그리고 제발 그 사과를 받고
내 마음이 풀려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나의 가장 큰 복수다.
엄마와 나 동생, 이렇게 셋이서
정말로 행복하게 사는 것.
그런 날이 올 것이다.
바라면 이루어진다.
찾는 곳에 길이 있다.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릴 지언정,
그 과정이 복잡하고
힘들고 괴로울 지언정,
내가 하고 싶어해서 되지 않은 일은 없다.
내가,
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될 것이다.
조금 더 빨리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
그 날,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엄마와 동생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동생과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 한 날,
이 일기를 다시 읽으며
새로운 일기를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드디어,
가족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는 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