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쓸데없이 잔정이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살아 왔다.
스스로가 늘 좋은 사람이고자 하는 욕심이 있기에, 잔정이 많다는 말을 나쁘게 듣진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핵심은 '쓸데없이'였다.
쓸 데가 있을 때가 있고
쓸 데가 없을 떄가 있다.
나는 그 둘을 분별하는 지혜가 없었다.
그러니 쓸데없이, 쓸 데가 없을 때조차 잔정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 삶의 어려움은 본질적으로 내 어리석음에서 기인한다.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모든 단순한 일을 복잡하게 만든다.
이 사실을 깨닫고도 반복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을 뿐만아니라 아집이 강한 것이고,
어리석은데 아집까지 강한 사람을 '구제불능'이라고 한다.
난 구제불능이다.
어쩌다 이런 인간이 됐을까.
깊이 생각해보면, 내가 짊어지고 있는 책임의 무게를 얕잡아봤기 때문인것 같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진짜 자신감이다'라면서, 근자감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 태도.
그 태도가 바로 이 문제의 본질일 수 있다.
내가 뭐라도 된 양
내 인생도 확실하게 통제하지 못하면서
남의 인생을 도우려고 하는가. 망상이다.
오만방자하다는 말이 아프게 들리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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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을 정하고, R&R을 명확히 하고,
성과 판단의 기준을 먼저 정하고,
그 기준에 맞는 인력을 채용하고,
그 기준에 미달하면 내보내면 됐던 일이다.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나는 어떠했는가.
눈 앞에 있는 사람에게 더 기회를 주고싶은 마음에,
유일하게 칼을 차고 있으며, 시의적절하게 뽑아야하는 포지션에 있는 인간이
그 역할을 방기하고 있었다.
쓸데없이 잔정이 많은 탓에 칼을 뽑는 대신에 판단 기준을 바꾸고 있다.
시장 상황 때문도 아니고, 다른 전략적인 이유도 때문도 아니고,
그저 '앞에 있는 사람'이 본인 역하을 잘 못하기 때문에 기준을 바꿔줬던 것이다.
이런 게 쓸데없는 거고,
그 '쓸데없는 잔정'에 휘둘리는 인간은 존재 자체로 '인간 악'이다.
그런 인간이 얼마나 큰 권력을 갖고있느냐에 따라,
가깝게는 가족부터 멀리는 전국민, 인류까지 고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칼을 뽑을 마음이 없다면, 칼을 차고있지 말고 내려놓아라.
칼은 멋을 내라고 차고있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 쓰라고 주어진 것이다.
모든 문제는 내가 칼을 제 때 들지 못함에 있고, 이번에 해결하지 못하면 영원히 해결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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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작은 조직이더라도
결정권을 갖고있는 사람에게
'쓸데없이 잔정이 많다'는 것은 결코 칭찬이 아니며,
제 역할을 전혀 못한다는 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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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이제야 알았다니 스스로가 한심한데,
다르게 보면, 저들이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을 난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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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과
하는 것이
또 다르다는 게 문제인데,,,
핑계가 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