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C버전
공개일기 한줄일기 내일기장
볼빨간
 오빠가 실직했다   2011
조회: 3158 , 2011-01-10 23:00
친오빠가 하나 있다
연년생이고 집안의 장남이자 장손이다
또래보다 머리 하나 더 크고 쌍꺼풀 진 눈에 오똑한 코.
한때는 주진모를 닮았다고 하기도 했고 밥도 맛있게 잘 먹는 어른들이 좋아하는 참한 청년이다
그랬다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내 칭찬을 하다가도 오빠를 본 후면 늘 오빠 쪽으로 주의가 돌아가버렸다
그랬다 난 속이 상했다

오빠는 대구에서는 조금 알아주는 지역의 기업에서 일하고 있었고
최근 그 회사가 이제 다른 회사에 팔려버렸다
그리고 오빠는 오늘부로 회사와는 다른 운명이 되었다.

오빠가.직장을.잃었다

나는 오빠의 회사 생활에 대해 알지 못한다
직장동료도, 오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어떤 고민을 하고 살았을지도.
그랬다
부모님께 전화가 왔다
내가 대구 가서 직장을 다니긴 하겠지만 전일제가 아니고
이제 오빠까지 이리 되니 환갑이 넘어 정작 쉬어도 되실 부모님의 마음은 빠짝빠짝 마르셨나보다
내게. 석사과정은 나중에 하고 그냥 일하면 안되겠냐고 물으신다.

당장 내 안에서 난리가 났다
오빠가 그리 된게 나랑 무슨 관계가 있고 왜 내 시간과 내 운명을 오빠한테 맞춰가야 하냐고-
내 대학원도 쉽게 결정한 게 아니었는데..직장을 그만 두고 내려가는 것도 가족과 함께 사는 것도
모두 쉬운 생각은 아니었는데 쉽지 않은 생각을 왜 더 비비 꼬아버리는지
내가 반쯤 꼬고 타인이 더 꼬아버려 이제 누구를 원망하고 속상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원망과 속상함이 우선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사랑이 먼저임을 깨닫는다.
꼬인 선은 자르면 되고 뭉친 것은 풀면 되지
어디나 해결점은 있게 마련이다.
부모님은 우리 가족 모두 쉬게 되니 주변에 보일 모습이 걱정되셨나보다
나는....
쉬어갈 때가 되신 부모님이 너무나 걱정된다
지금 직장사람들이 해주는 송별회자리에 있다는 오빠가 주저앉아 울어버릴까봐
엉덩이를 PC방 의자에 푹 박고 일어나지 않으려 할까봐 너무 걱정이 된다
오빠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시점에 온 거라고.
남들이 다 토익이며 영어회화, 취업과 면접을 준비할 때
편하게 시작했던 오빠를 바라보며 불안한 자리였으니
이제 오빠 힘으로 올라갈 계단. 한걸음한걸음 힘차게 내딛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금만 힘들어하면 좋겠다고.
오빠 뒤에는 평생 정직한 노력으로 살아오신 부모님과 싹싹한 잔소리쟁이 동생이 버티고 있으니
오빠도 무언가 새로 시작하고 힘들 때 뒤돌아보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거기 있는 것만으로 무언가에 비교할 수 없이 큰 힘이 되어주던
우리 가족으로 인해 더 큰 힘을 얻게 되길 바란다고 말해주고 싶다.

클로저   11.01.12

에고 너무 안타깝네요.
제가 속사정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결심한 일 그대로 하셨음 좋겠단 생각이 드네요. 저도 가족한테 말려서 세월가는줄 모르고 살고 있어서 남일 같지 않아요 ㅠㅠ

cjswogudwn   11.01.15

석사과정에 계셨던 분이네요.
저도 곧 대학원에 입학할 예정인데(붙으면)
글을 보고 있으니 제 입술이 다 바짝바짝 마르네요ㅎㅎ;;
나쁜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을 거에요 다 잘 될겁니다.

철수   11.01.16

화이팅~
(외래어 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거시기
라는 말처럼 다용도로 쓰이는거 같아요...
내 뜻 알겠지요 ㅎㅎ~)

볼빨간   11.01.19

격려 진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