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 꾸는 나의 행복 │ 치유일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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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상상하는 나의 미래의 모습은 조금은 우습기도 하다. 뭐랄까 '근친상간 전문가' 라는 타이틀이 마음에 든다. 성폭행을 당한 사람 입장으로서, 성폭행을 누구에게 어떻게 당했느냐에 따라 해결, 치료 등의 접근법이 달라져야 함을 느낀다. 내가 아무리 범용 성폭행 치유서를 읽어도 근친상간을 주로 다루는 치유서를 읽는 것만 못하다. 피해 당시에 어렸는지 성인이였는지 가해자가 누구였는지 당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등이 피해자에게 다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친아버지에 의한 친족성폭력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아버지가 아닌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다는 것은 제 1차 보호자가 없다는 심각한 문제와 아이의 성장 과정에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부모와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져버린다는 문제가 있다. 그로 인한 혼란과 후유증이 상당하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아직 말로 다 정리할 수가 없다. 친족성폭력은 접근하기도 해결하기도 어렵다. 오랜 시간 계속되는 성폭행과 가족들의 순응이 피해자로 하여금 항거 불가능상태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에 자신이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기도 하고 알더라도 그 상황에 이미 순응해버려서 탈출의 의지가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이런 상황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해결할 수 있는 전문성이 필요한 사안들이다. '성'폭력은 피해자로 하여금 혼란을 느끼게 한다. 성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에게는. 거기에 '가족'이라는 문제까지 더해진다면 피해자 스스로는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문제가 되어버린다. . . 뭐라고 횡성수설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이런 '친족성폭력'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구조와 시스템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 그래야 내 삶의 숙제를 풀 수 있을 것이고, 어린 나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보상할 수 있을 것이고 나와 같은 사람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기 문이다. . . 그리고 내가 '최고의 친족성폭력 전문가'로서 매체에 소개되는 그 날을 꿈꿔본다. 나는 그 어떤 수치심도 없이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저는 친족성폭력 피해자입니다' 라고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그 날을. . . 그렇게 된다면 나는 정말 더할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 뭐 굳이 방송을 타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바라는 건 그렇게 방송에 나가는 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게' 되는 것. 내가 할 수 있을 지 잘 모르겠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런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하는 거니까. 훨씬 더 옛날부터 사회문제로 첨예하게 대두되었던 '동성애' 문제도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아주 옛날에는 동성애자들이 처형을 당할 정도로 혐오를 받았고 그들의 지속적인 투쟁과 용기 있는 coming out으로 서양에서는 동성애가 일반적이게 되었다. 물론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서 호감을 갖고 있는 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도 분명 더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동성애자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성폭행 피해자는 오죽할까. 아직 피해자들이 입도 열지 못한 실정인데. 아마 오래 걸릴 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아서는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할 것이다. 내가 사는 동안 성폭행 피해자들이 당당하게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 . 주변부터 서서히 변화시켜 갈 것이다. 분명 통계상으로는 내 주위에 몇 명 쯤은 성폭행을 당한 친구들이 있어야 맞는데 나는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 명쯤은 있어야 하는데 다들 자기들 가슴에 묻고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으니 드러날 수가 없다. 나는 드러낼 것이다. 바로 내 옆에 있는 내 친구에게. 내가 이런 저런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일은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어쩌다 한 번 일어나서 뉴스에서 크게 터지는 그런 큰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그런 일.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일어나는 건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다들 알아야 한다. 무엇을 괴로워하는 건지 어떻게 해야 괴롭지 않은 지. 다들 알아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무런 죄도 없기 때문이다. . . 더이상 피해자에게 수치심과 죄책감을 뒤집어 씌우는 이런 사회 풍토를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이다. 잘못된 성관념이 문제라면 그것부터 짚고 넘어갈 것이다. 친족성폭력, 모든 관점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분석하고 그것의 피해자인 나 자신에 대해서도 파헤칠 것이다. 가해자 역시 연구할 것이다. 인간의 강간 본능, 어린이와의 성관계에 대한 환상 이것을 제어하는 개인의 '이성'과 사회의 '강제' 이러한 상황들을 용납하는 인간 사회의 풍토 한국 사회의 문제들 피해자들이 받는 심리적 충격의 다양한 측면들 발달 심리학적으로 부모의 성폭행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지속되는 폭력에 순응하는 약자들의 행동방식 피해자를 지원하는 방법들(NGO, 상담소, 법 제도 등) 가해자를 처벌하는 법, 재활하는 시스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길 등. 모든 방면에서 친족 성폭력을 분석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이해할 수 없어 혼란스러웠고 혼란스러웠기에 불행했던 지난 시간들을 딛고 일어나 명료하게 이해되는 나의 삶을 살 것이다. 나는 이해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존재로 살고 싶지는 않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래서 나는 지금 어떻게 된 건지. 하나님에게 물어 답이 나올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 부처에게 물어 답이 나올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 내 안의 신에게 물어 답이 나올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고 가해자에게 물어 답이 나온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 . 나는 성폭행을 당했던 것이지 내가 원해서 섹스를 한 게 아니었다. 나는 내 몸을 판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까. 어째서. . . 모든 것들을 명료히 정리할 것이다. 내가 정리한 것들을 통해 아직 정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길을 비춰줄 것이다. 물론 내가 그들에게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줘서 좋은 것도 아니다. 결국은 모든 피해자들이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사회 풍토가 있기에 나는 그러한 상황에서 치유를 향한 첫걸음을 조금 더 쉽게 뗄 수 있도록 상담소와 피해자를 연계해주는 아주 간단한 단체를 대학교 내에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뭐 굳이 그런 목적이 아니어도 작은 말하기 대회처럼 여럿이서 모여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그런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기도 하다. . . 이렇게 정면으로 피하지 않고 내 삶의 무게를 있는 그대로 받아내는 것. 그것이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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