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 치유일지 | |||
|
그냥, 딱 하나다. 상식적인 상황에서 살고 싶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도망치지 않아도 되고 부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냥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되도 소원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날마다 부정한다. 엄마도 부정한다. 그 자식도 부정한다. 있었던 일 그대로의 무게 그에 상응하는 반응을 보이지를 않는다. 이제와서 왜 라는 반응. 뻔뻔하고도 뻔뻔한. 억장이 무너진다. . . 어떻게 하면 사람이 저렇게 비상식적이고 이기적일 수 있을까. 반문하고 소리쳐보지만 답은 없다. 나 혼자 분노할 뿐이다. 정말 흠씬 두들겨 패서 내 발 밑에서 잘못했다고 빌게 만들고 싶다. '다 인정해. 네 말이 맞아, 내가 그랬어. 네 말이 다 맞아' 라는 말을 듣고 싶다. '너도 즐겼잖아. 이제 와서 왜 그러냐. 인생 망치지 말고 살아.' 라는 말은 나를 너무너무 화나게 만든다. 왜 화가 나는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화가 난다. 뭐가 잘못 됐는지 나도 설명할 수 없지만 화가 난다. 저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이해 좀 시켜줬으면 좋겠다. 상식 밖의 일, 평범함 밖의 일이 늘 나를 힘들게 한다. 그러면 나는 털어놓을 사람도 없이 늘 혼자의 세계에서 괴로워한다. 제발, 가치가 뒤집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면서. . . 친족 성폭력을 저지른 사람들의 기사를 보면 '수 차례' 성폭행한 죄, 라는 부분을 본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어떻게 수 차례밖에 안 될 수가 있지?' 처음엔 이해가 가질 않았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갈 듯 하다. 수 차례밖에 안 될 리는 없다. 특히 친족 성폭력의 경우에는. 대상이 자기 딸인데다가 반항을 못하는 상황, 그 상황에서 가해자는 상습적이고 일상적으로 성폭행을 저지게 된다. 밥을 먹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른 채. 자기 앞에 있는 자신의 딸이 어떻게 병 들어 가고 있는 지도 모른 채. 입증을 못 하는 건가 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증거가 없으니, 있었던 일 모두가 인정되지는 않고 가해자가 인정하거나 정황상 부인할 수 없는 몇 차례의 성폭행만 인정되고 거기에만 형이 부여되나 보다. 나 또한 입증할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엄마가 목격한 것은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모든 것은 나의 증언과 그 자식의 자백에 의해서만 입증이 가능할 터. 그러나 그 자식이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임은 불 보듯 훤하다. 나는 인정받지 못하는 것들을 이야기해야겠지. 분명히 내가 겪었고 내 삶에 일어난 일이었는데, 인정받을 수 없는 그 좌절을 겪어야 하겠지. 억울함에 몸서리치겠지. 그 자식의 뻔뻔함에 다시 한 번 오열하겠지. . . 아무리 생각해도 개새끼다. 온전히 감당하기도 힘든 분노다. 어떻게 해야 할까. 기억을 불러들이려고 노력하는데 자꾸만 억눌러 버린다. 너무나 커서. 너무나 괴로워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그냥 학교고 뭐고 다 그만두고 어디 절에나 들어가버리고 싶다. 도저히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일상생활을 하면서 그 분노와 그 때의 감정, 느낌들을 불러들일 용기가 나질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 . 어디 표출할 데라도 있으면 감정을 불러올 수 있을 텐데. 온전히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게 무서워서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저 3월 말에 있다는 작은 말하기 대회를 기다릴 뿐이다. 성폭력 위기센터에서 진행하는 집단 상담도 얼른 다시 진행되기를 바란다. 그저 그것 뿐이다. 혼자서는 못할 것 같다. 두렵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