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가 귀찮은 날   치유일지
  hit : 2734 , 2013-03-09 11:38 (토)


오늘은 조금
살기가 귀찮은 날이다.

옆에는 룸메 아이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고
커다란 창문 밖에는 이파리가 없는 나무들이
바람에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하늘은 뿌옇고
바람만이 소리를 내며 귓가를 맴돈다.

이런 날은
살기가 조금 귀찮다.

아침도 아이들이랑 배불리 먹고
별 걱정 할 일도 없지만
누군가를 만나 신나게 놀고 싶은데
나를 찾아주는 사람은 없고
그렇다고 내가 찾고 싶은 사람도 없고
아무나 찾기에는 자존심이 상하고
내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바로 옆에 있는 사람조차도 멀찍이 치워내서

결국에는 이렇게 
혼자 남게 되는 오늘 같은 날은
살기가 아주 귀찮다.



.
.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
더더욱.

나도 저렇게 행복하고 싶다.
나도 그냥 오늘 내일 걱정했으면 좋겠고
친구들 사귀는 거 
앞으로 뭐하고 살지
오늘은 뭐하지
내일은 뭐하지
뭐하고 놀까
누구랑 놀까

이런 거 고민했으면 좋겠다.
나도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죽어도 그게 안 된다.

자꾸만
내 앞에 놓인 이 무거운 주제를 
계속해서 떠올리고 있는다.

나는 이 숙제를 어떻게
언제까지 풀어야 하는 걸까.
왜 나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래서 나는 무얼해야만 잘 사는 걸까.

얼른 내 경험에 대해서 털어놓고 싶고
그래서 가해자에게 화를 내고 싶고
그리고 나아가서 치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들을 하는데



너무나 까마득해서.



.
.



언제쯤 끝날까.
끝나긴 하는 걸까.
근데 내가 지금 이렇게 사는 게 맞긴 한 걸까.
내 삶은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나도 다른 사람들이랑 그냥 똑같이 어울리고 싶은데.
나는 왜 이런 걸 고민하고 있어야 할까.

생기가 고갈되는 느낌.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이런 상황 속에서 버티는 데에 써버리는
이 피폐한 느낌.




나는 왜 
버티는 것만 해도 이렇게 힘이 들까.
원래 나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은 다 이러는 걸까? 

숨 쉬는 것 자체가 힘든 걸까? 
나만 이런가? 





.
.



나는 이 짐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걸까? 




.
.




길다.
지난 13년을 버텼고
그 후로 2년을 
살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했는데
아직도 많이 남았단다.


그냥 아무렇게나 살면 
그럭저럭 살 수 있을 텐데
나는 왜 이렇게 고집이 세서
도저히 그렇게는 할 수가 없다.

사람들한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건 없건
그딴 일은 그냥 잊어버리고 살면 그만일텐데
왜 자꾸 이렇게 끄집어 내려고 하는 건지
나조차도 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냥 다 잊고 살면 되잖아.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는 개뿔
그냥 나 자신이 아니면 어때? 
지금 이렇게 괴로우면 언젠가는 나 자신일 수 있게 되는 거야? 





.
.



미치겠다.
제발 
누군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걸 
누구라도 좀 증명을 해줬으면 좋겠다.



가끔은 생각한다.
나는 지금 다소 사람들을 멀리 하고 있다.
그럴 수록 사람들과 잘 지내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러면 생각한다.

지금 이 정도만 해도 나는 대단한 거라고.
잘 지내고 있는 거라고.
하지만 더욱 욕심이 든다.
여기서 더.
더 많은 사람들과 더 친하게 지내고 싶어, 라고.


하지만 나는 그게 힘이 든다.
너무너무 힘이 든다.
자꾸만 숨고 싶고 그저 혼자 있고 싶다.
아무런 변화도 위기도 불안도 없는
나의 내면세계에서,
법칙에 의해 돌아가는 자연 속에서
그렇게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는
그 바깥으로 나가서 
생명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 싶어
미쳐버릴 것 같다.




.
.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진심으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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