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구속(Double Bind)   치유일지
  hit : 3603 , 2013-03-09 22:21 (토)



오늘 심리학개론을 공부하다가
이중맹목법(Double Blind)이라는 용어가 나왔다.
개론서의 용어 정의가 의심스러워서
인터넷에 검색을 하던 중에
이 용어와 자주 혼동되어 사용되는 
이중구속(Double Bind)이라는 용어를 만나게 되었다.


관련된 블로그 포스팅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하고 쳤다.

그래, 이거야
하면서.



.
.


이중구속이란, 
"상반되는 메시지가 동시에 전달되는 것을 의미한다" 고 한다.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전혀 괜찮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다든지
'나만 믿어'라고 말하면서
정작 믿을 만한 행동은 보여주지 않는다든지.
'이 물건 마음껏 써도 돼'라고 말했으면서
내가 그 물건을 쓰는 걸 은근슬쩍 막는다든지.


이렇게 상반되는 메시지가 계속해서 전달되면
사람은 행동의 기준을 잃게 되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 이론을 발표한 그레고리 베이트슨이라는 학자는
바로 이러한 상반된 메시지에 지속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노출되었던 사람들이 정신 분열증에 걸리는 것일 수 있다,
고 주장했다고 한다.


"믿을 수 없는 인간을 믿어야 할 때
모순되는 말과 행동에 나 자신을 맞춰야 할 때
믿을 수 없는 자를 믿지 않으면 안 될 때
우리는 미치고 팔짝 뛰게 된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몇 개월, 몇 년, 혹은 평생
지속되어야 한다고 할 때
정신줄을 놓치는 사람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라고 이 포스팅을 쓴 저자는 말했다.



믿을 수 없는 인간,
모순되는 말과 행동-
그것들을 믿어야 하고 
그것에 나 자신을 맞춰야 하는 삶.





믿을 수 없는 사람
그러나 그는 나의 아버지였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내가 보기에 
그리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
그 사람은 나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를 믿지 않기 위해서 어린 나는
'아버지는 딸을 보호한다'
라는 사회적인 통념을 뒤집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을 뒤집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모순되는 말과 행동,
어머니와 같이 있을 때는 내게 아무런 짓도 하지 않다가
둘이만 있게 되면 돌변해서는
온갖 위협과 협박, 그리고 성폭행을 일삼았던 그.
그러다가도 어머니가 나타나면 
바로 돌변해서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에게 다시 잘해주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를 믿어버리고는
아무일도 없는 줄 알았다.

나는 그런 상황에
분명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이런 집안 환경에서
미쳐버릴 수밖에 없었고
미치지 않기 위해서

'아, 이게 정상이다'
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정상이 아닌데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런 비정상 속에서 살아야만 한다는 것은
견딜 수 없게 힘든 일이었으므로.
그리고 이 4가족 중에서 '나만' 그것을 안다는 것은
상당히 무서운 일이었기에.

나는 
그 모든 것에 나 자신을 맞춰야만 했다.
미치거나
죽어버리지 않기 위해.




일요일 아침,
TV 속에서 성폭행범의 뉴스가 나온다.
어린아이를 성폭행한 범인이 검거되어
징역형을 받고 
끌려가는 장면들.
나는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우리 가족들이 어떻게 반응하는 지 살핀다.
엄마든 아빠든
아무렇지도 않게 그 뉴스를 보면서
과일을 먹는다.

나는 혼란스러워지지만
이내 저게 나에게도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을
애써 잊는다.
잊어야 한다.

'이 상황은 잘못됐다.'
는 메시지를 나는 끊임없이 받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 상황에서 잘못된 것은 없다'
는 듯이 행동하고 있으니.




.
.


아버지는 나한테 이러면 안되는데
아버지는 '아빠니까 이래도 된다'고 한다.

이렇게 살고 있는 우리집은 분명 이상한데
아무도 이상하다는 듯이 행동하지 않는다.

분명 아버지 잘못인데
아버지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듯이 행동한다.



.
.




나는 지금 뭔가 분명히 문제가 있고, 힘이 드는데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고 있고
사람들도 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한다.
내 안의 메시지와 바깥으로부터의 메시지가 일치하지를 않는다.
자아가 혼란을 겪고 있다.


일치,
시켜주어야 한다.




그래서 이야기해야하는구나.
다른 사람들이 내가 힘든 것을 알 수 있게.
그래서 내가 털어놓고
그 사람에게 '아 그래 너 힘들겠다'
는 메시지를 받으면 편안한 거구나.

내 안으로부터의 메시지와 일치하니까.
'힘들다'는.




바깥으로부터의 피드백을
내면으로부터의 피드백과 일치시켜 가야겠다.
내 주변에 내 피해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많을 수록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많을 수록
메시지의 이중성이 줄어들거고
그러면 나는 
안정될 수 있겠지.




.
.



그래서 나를 비롯한
성폭행 피해자들이 힘든 거구나.
이런 이중적인 메시지 때문에.


일치시키자.
일단 내면으로부터의 메시지가 맞는 거니까
바깥으로부터의 메시지를 변화시켜야 해.
응응.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보일 수 있는 집단에 속하고
나에게 나와 상반되는 메시지를 보낼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줄이고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 속에 있는 것. 





하나, 
건졌다.






* 블로그 포스팅 출처(http://0jin0.com/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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