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넷_ "옆에 앉아도 돼?" │ 치유일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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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좋은 걸 주겠다는데도 안 받겠다는 거야?" "귀찮게 하지 말고 저리 가. 나 좀 쉴 거야." "답답해. 너 왜 그래?" "내가 뭘." . . "왜 더 나아지려고 하질 않는 거야?" "내가 왜 더 나아져야 하는데?" "지금이 형편 없으니까!" "내가 형편 없다고?" "응. 형편 없어. 온통 검은색 풍선 투성이에 힘 없고 의욕 없고 꿈도 없잖아. 현실에 안주하잖아." "그래서 너는 내가 형편 없다고 생각하니?" "응. 그러니까 빨리 더 나아지자. 너도 어서 이 알록달록한 풍선들을 받아. 그리고 나처럼 예쁜 옷을 입는 거야." "너나 많이 해." . . "뭐가 불만이야 도대체?" "너야말로 왜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찾아와서 귀찮게 하는 거야? 그냥 가던 길 가면 되잖아." "미안해서 그래. 나만 행복해서. 너는 힘들었을텐데 나만 행복한 게 너무 미안해서." "미안해할 것 없어. 이미 그래버렸으면 앞으로도 계속 그러면 돼. 지금까지 그래와놓고 새삼스럽게 왜 그래?" "이제 알았으니까. 내가 너한테 나빴다는 거. 같이 겪어야 했는데 너한테만 짐을 지우고 떠나버렸다는 거 이제 알았으니까 반성하니까. 그래서 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진짜 미안하면 그냥 나 귀찮게 하지 말고 가던 길 가. 이러는 게 더 싫어." "내가 밉니?" "미울 것도 없어. 난 네가 오기 전에는 너라는 애를 몰랐으니까. 그런데 이제 귀찮고 싫어지려고 해. 그러니까 더 미워지기 전에 가." "왜 내가 안 미워? 나는 너를 버렸어. 나 혼자 도망가서 행복하게 살아버렸다고. 너를 구하러 오지도 않았어. 그럼 미워해야 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나는 네가 있는 지도 몰랐다니까?" "이제 알았잖아." "네가 도망을 안 갔으면 뭐가 해결되는데?" "둘이 힘을 합치면 뭐든 할 수 있었겠지." "그래, 그럴 수도 있었겠네. 그렇게 잘 알면 왜 도망갔어?" "무서웠어." "그럼 잘 했어. 넌 도망갔고, 난 안 도망갔고. 선택의 결과일 뿐이야." "하지만 내가 안 도망갔더라면-" "네가 도망갔으니까 너는 그렇게 알록달록한 풍선을 얻었겠지. 그래서 지금 나눠주려고 하고 있잖아. 우리 같이 있었으면 아마 둘 다 검은 풍선 밖에 못 가졌을 거야." . . "나를 안 미워 하는 거야?" "미워할 이유가 없어. 넌 나보다 어른도 아니고 나보다 강하지도 않아. 나를 책임져야 할 의무도 없어. 너는 그냥 네 갈 길을 갔을 뿐이야. 그리고 고맙게도 이렇게 다시 왔잖아. 그런데 내가 너를 왜 원망한단 말이야? 내가 보기에는 너도 나만큼이나 약해보여." "정말로 나 나 안 미워?" "자꾸 묻지 말아줄래." "대답해줘. 나 안 미워?" "그래, 안 미워. 오랜만에 누구랑 얘기하니까 좋다. 멀리 갔다 왔니?" "모르겠어. 근데 다시 오는 게 힘들었던 걸 보면 멀리 갔었던 것 같아." "뭘 그렇게 힘을 들여서 다시 온 거야. 여기가 뭐가 좋다고." "하나야. 이제 다 끝났어." "뭐가?" "우리를 힘들게 했던 것들이 이제 다 끝났어. 그래서 나 다시 돌아온 거야. 너한테 알려주려고." . . "뭐가 우리를 힘들게 했었는데?" "많은 것들이." "그것들이 이제 다 끝났다고?" "응. 끝났어. 그래서 나 이제 괜찮다는 걸 알아서 다시 돌아온 거야." "그럼 다행이네." "응, 수고 많았어." "수고는 뭘.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나, 옆에 잠깐 앉아도 되?" "다시 안 가도 되는 거야?" "응, 이제 계속 여기 있어도 돼." "여기 계속 있는다고?" "응. 계속 있을 거야, 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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