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다 │ 치유일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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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정말 정신이 없이 지나갔다. 월요일에 동아리 첫 모임, 화요일에 룸메랑 옷 사러 갔다 오고 수요일에 작은 말하기 대회 목요일에는 북콘서트 어제는 또 새내기들이랑 놀고. 알차고 정신 없게 지나갔다. 그리고 주말은 아주 조용히 노느라 못한 공부와 과제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구하며 보내고 내일 저녁은 기숙사 새내기 아가들과 바베큐 파티로. 얼마만에 찾아오는 행복인지, 모르겠다. 대단한 일이 있어야 행복한 게 아니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그냥 이 정도면 나는 정말로 행복하다. 더는 바랄 게 없을 정도로. 친구들과 만나서 어렸을 적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이미 만족한다. 나는 옛날 이야기를 잘 하지 못했다. 내 과거는 오로지 성폭행 당한 일로만 가득하다고 생각했기에. 과거의 그 어떤 부분도 떠올리지 않았고 입에 담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새내기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어렸을 때 있었던 재미난 일들을 마음껏 이야기했다. 참 재미난 일이 많았었다. 좋은 추억도 많았고. 내 인생이 이렇게 재미있고 다채로웠나 싶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 부렸던 말썽 이상했던 중학교 교칙 이야기 고등학교 때 나를 힐링해주었던 학교 정원 이야기 기숙사 친구들과의 추억 이야기. 나 정말 좋은 일도 많았었는데. . . 좋기만 한 게 아니었다는 것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한 주여서 좋았다. 27일 수요일, 다른 모임이 끝나고 출발하느라 늦을 뻔한 작은 말하기 대회. 부랴부랴 찾아가서 5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모두 둘러 앉아 자기 소개를 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해봤자 깊은 이야기는 못 할 줄 알았는데 그 어디서 이야기했던 것보다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었다. 아직 남 이야기하듯 하기는 했지만. 하지만 한 가지 깨달았다. 굳이 울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나는 내가 이야기를 하면서 울지 않는 것에 대해 굉장히 고민이 많았었다. 그런 일을 이야기할 때면 울어야 하는 거 아니야? 라고. 하지만 내가 왜 울지 않는 지 알았다. 나는 울기를 싫어한다. 슬프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억울하고 화나고 짜증날 뿐이다. 슬퍼서 울려고 하니까 다른 감정도 안 나오고 눈물도 안 나왔던 것 같다. 어렸을 때 방에서 혼자 울 때도 '슬프다'보다는 '죽여버릴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울었었다. 그러니까 지금도 그냥 그런 감정들이 올라오는 대로 내버려 두면 된다. '짜증나' '억울해' '화나' 의 감정을 '슬퍼' '아파' '힘들어' 로 포장하려 들지 말고. 아무튼 그렇게 길게 내 이야기를 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내가 썼던 '세상에서 가장 나쁜 아빠에게' 라는 글을 그 자리에서 읽었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짜증이 났다. 짜증나는 목소리로 그리고 이를 앙다물고 그 편지를 읽었다. . . 작은 말하기를 같이 했던 언니들과 뒷풀이를 갔다. 결국은 밤을 새기로 해서 근처 카페에서 수다를 떨면서 밤을 샜다. 처음 만난 분들과 밤까지 새다니. 참 기분이 신기했다. 그동안 다른 친구들과는 별로 술을 마시고 싶지도 않았고 밤을 새고 싶지도 않았는데 이 분들하고는 정말 더 같이 있고 싶었다. 나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수다떨듯이 할 수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정말 정말 좋았다. 그렇게 밤을 새면서 수다를 떨고 기숙사로 돌아와 눈을 잠깐 붙인 다음 다음 수업에 들어갔다가 또 바로 7시에 열리는 북콘서트에 참가하기 위해 학교를 출발했다. 북콘서트는 생각보다 그저 그랬다. 은수연씨의 이야기는 내게는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물론 대단한 것은 맞지만 저 정도는 나도 이미 하고 있는 일이었고 하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은수연씨가 그저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치유의 단계가 나와 달라서 나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힘들었던 시간에 대해서 조금 더 듣고 싶었다. 그 시간이 어땠고 어떻게 보냈는지. 하지만 그 부분보다는 아마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 지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 돼서 그 이야기를 많이 하신 것 같다. 나는 북콘서트보다는 그 자리가 끝나고 상담 선생님과 다른 언니 두 분과 함께 저녁을 먹었던 것이 더 좋았다. 바로 앞에서 친구와 이야기하듯 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내 솔직한 감정에 대해서 털어놓을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한 구체적인 기억과 그 당시의 감정을 떠올리는 것이 잘 안 된다.' 라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나의 최대의 고민을 밥을 먹으면서 언니들에게 툭 던지듯이 이야기했다. 언니들 역시 밥을 먹으면서 '시간이 조금 걸린다. 바로 되는 것이 아니다.' 라고 대답해주었다. 다들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치유를 시작하고 바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고. 몇 년씩 걸렸다고. 그 말을 듣고 무지 안심이 되었다. 나도 시간을 가지고 기다리면 되는구나. 그리고 언니는 이런 말도 해주었다. '치유를 하는 데는 피해를 당한 시간의 두 배 정도가 걸린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고. 26년, 이다. 앞으로 26년.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느긋해진다. 26년 걸릴 일을 너무 조급하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내가 쉰 살이 되면 아주아주 편안한 마음이 될 수 있겠지. . . 뭘 했는 지 잘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정신 없이 그리고 행복하게 지나간 일주일이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고 싶다. 행복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나는 늘 지금의 행복을 의심했었다. 나는 행복해서는 안 되는 아이인데 불행해야 당연한 사람인데 나는 왜 행복할까 뭔가 문제가 있는 게 틀림 없어, 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나도 행복할 수 있다. 성폭행 당했다고 해서 불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다만 성폭행 때문에 힘들어지면 그 때 힘들면 되는 것이다. 나라고 언제나 힘들기만 하라는 법은 없다. 언제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고. 이 행복을 즐기기만 하는 데 쓸 시간도 없는데. 의심할 시간이 어디 있어. 열심히 즐겨야지. 아무런 의심도 없이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해야겠다. . . 의심의 여지 없이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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