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나로 사는 데 익숙해지기.   trois.
  hit : 2439 , 2013-08-18 20:59 (일)


지금의 내 모습
그러니까 내가 사고 하는 방식과 
행동하는 방식은 모두,
내가 살아온 삶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정확히 어떤 사고가 어떤 일의 영향을 받았고
어떤 행동이 어떤 사건의 영향을 받았는지
이제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사고와 행동만을 남긴 채
그 구체적인 일과 사건들은 모두 
지나갔고,
기억의 저 편으로 넘어가버려
나로서는 이제 알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기억이 남아 있더라도
그 기억과 그 사고 및 행동의 연결 고리가
떨어져나가버렸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내가 나 자신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주 당연하다.


.
.


나는 언제나
성폭행으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들을 
어떻게든 제거해보려고
몸부림을 쳤었다.

그래서 자신을 철저하게 분석하는 데 공을 들였다.
나는 이런 저런 사고와 행동 방식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이런 저런 일 때문이거나
이런 저런 사건의 영향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을 들여 그런 사고와 행동들을
하나 하나 교정하는 일에 열을 올렸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자신을 분석하는 것은
당장의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선 자신을 분석하는 일은,
좋게 말하면 스스로에 대한 탐색이라 할 수 있지만
어쩐지 적당한 선에서 그치는 경우는 드물었다.
늘 적당한 경계선을 한참이나 넘어선 뒤에
다시 돌아올 수밖에는 없었다.
고무줄의 탄성처럼
그렇게 몇 번씩 적당한 그 지점의 앞 뒤를 왔다갔다거리다가야
겨우 중심을 잡는 것이다.


.
.


물론 분석은 나에게 많은 것들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서 나에게 가져다 준 것은
그래서 결국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싶다면,
지금껏 살아온 것과 다르게 살면 된다고.




내가 처했던 상황과
다른 상황에 나를 놓으면 된다고.
장기의 말을 
이곳에서 저 곳으로 옮기듯
그렇게 그저
나를 옮겨 놓기만 하면 된다고.

그러면
자연히
내가 주변 환경과 감응하면서
다시금 스스로의 삶을,
그 환경에 맞는 사고와 행동을 익혀갈 거라고.




그러니까
성폭행으로 인한 영향이 싫다면
이제부터는 성폭행이 없는 환경에 나를 두면 되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13년 동안 성폭행에 노출되어 형성된 것이라면
다르게 형성되는 최소한 그와 같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새로이 형성되는 성장기에 처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다시 적응하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방법밖에는 없다.

새로운 환경에 나를 노출시켜놓고
내가 새로운 방식으로 적응하는 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살아가는 방식,
그러니까 사고하고 행동하는 방식은
무슨 열매처럼 내 몸에 매달린 것이 아니라서
장기처럼 제거하고 이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내가 고치고 싶은 부분이 있다고 해서
그 점을 통째로 들어내고
내가 바꾸고 싶은 대로 바꿔 넣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컴퓨터가 아니기 때문에,
무슨 프로그램을 교체하는 식으로는 
수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몸과 영혼은
햇볕의 세례를 받고 자라나는 식물처럼
온갖 것들의 영향을 받으며

'구성'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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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버섯이 만약에 병들거나
이상한 모양으로 자랐다면
거기에 주사를 놓거나
칼로 썩은 부위를 잘라낸다거나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런 것은 임시 방편일 뿐이다.

그렇게 응급처치를 한 뒤에는
반드시 
그렇게 버섯을 병들게 한 환경으로부터 버섯을 격리해서
새롭고 적절한 환경에 
심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나 역시
나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슨 해부를 하듯이 
나 자신의 정신세계를 이잡듯이 뒤져
그 연결고리를 찾는 작업으로 
스스로를 마모시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그것이 나 자신에게 가장 좋은 일이며
내가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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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먼 곳에서 살면서
자연을 그리워하고
조각같은 자연이나마 공원 같은 곳에 가서 찾을 것이 아니라,
정말 자연을 원한다면
내가 자연에서
아니 적어도 자연 근처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건이 많아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물건이 쌓여 있는 한가운데에 살면서 괴로워할 일이 아니라
물건이 적은 곳으로 나 자신을 옮기는 것이다.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 사람들과 맺은 얕은 관계들이 나를 괴롭게 한다면
그렇지 않은 곳에서 살면 되는 것이다.




.
.



그렇게 나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환경 속에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다.




그래서
나의 동물적 본성이
세상을 두려워한다면
나는 나를 동적인 환경에 둠으로써
활동적으로 움직여도 전혀 세상은 나에게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무의식에 계속 새겨넣어야 한다.



무의식에 새겨넣어진 활자는
의식에서 수정하기 어렵다.
무의식은 저 깊은 곳에 덩어리진 채 존재한다.
그리고 그 바로 앞에 의식이라는 유리창이 있어서
그 무의식을 의식 바깥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

의식의 유리창 바깥에서 보고 있는 사람은
마치 그 유리창에 
그 덩어리가 그려져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의식은 단지 유리창일 뿐이다.
진짜 덩어리는 그 유리창 너머에 있는 것이다.

유리창에 묻은 얼룩은
닦아낼 수 있다.
그러나 그 너머에 있는 덩어리는
만질 수가 없다. 

그래서 
빛을 비추거나
바람을 보내거나
하여 
서서히 
새겨 나가야 한다.



반복.
반복만이 무의식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할 지도 모른다.




.
.


오로지 반복, 
무의식과 그 반복된 환경의
수없는 조응.
그것이 나를 만들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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