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가 들어맞게 │ troi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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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위해 이다지도 열심히 노력을 하는 걸까. 무엇을 얻고 싶어서 이렇게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고민을 하는 걸까.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다. 그저,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는 것. 그러니까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지켜지는 것이다. . . 얼마 전에 집으로 오는 길에 그 사람의 차를 보았다. 우리 집 쪽에서 내려 오고 있었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근처에서 만나 차를 얻어타고 왔다는 것이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가 아빠를 만나는 것이 싫다. 자기 딸을 13년 동안 성폭행한 자기 남편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만나는 엄마를 볼 때마다 우리 엄마가 아닌 것 같다. 내 앞에서 그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때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느냐는 생각이 든다. 화를 내고 싶지만, 그래서 뭐하겠느냐, 고 이내 체념하고 만다. 하지만 이런 것들 때문에 나는 도저히 엄마를 진심으로 좋아할 수가 없다. . . 나는 그저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일상생활을 구성하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랄 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엄마는 아빠에게 화를 내는 것이 정상이고 웃는 얼굴로 그와 밥을 먹을 수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다. 엄마는 아빠를 잘도 보고, 그다지 미워하는 것 같지도 않다. 아니, 오히려 나에게 있었던 일 같은 건 이미 잊어버린 것 같다. 내가 잊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래서 자신도 잊고 살고 싶은 걸까. 한 편으로는 그래, 엄마도 잊고 행복하게 살고 싶겠지, 라고 생각하다가도 그래서는 안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 없이 화가 나고 미워진다. 나는 그저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당연하게 이뤄졌으면 할 뿐인데.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나에게 미안해하는 게 맞을 텐데, 아빠는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하긴, 상식이 박힌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런 일을 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이런 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나만 생각하며 살겠다고 다짐을 하다가도 문득 문득 치고 올라오는 이런 감정들은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특별한 일이 아니라 아주 일상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 . 아귀가 들어맞았으면 좋겠다. 나는 엄마가 아빠를 미워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엄마는 전혀 그렇게 보이질 않는다. 나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아빠에게 화를 내는 것이 맞을 텐데. 그 둘은 합심해서 나의 과거를 잊기라도 한 것 같다. 동생에게서 아빠를 뺏고 싶지는 않다.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 나만 모든 것을 짊어진 느낌. 엄마가 미워진다. . . 어디 나가서 정말 혼자 살고 싶다. 이런 집에서는 살고 싶지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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