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없음 │ 지난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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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한다는게,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내 몸뚱이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 아프고 싶어서 아픈게 아니라는 것. 하루에 두-세시간 밖에 잠깐 나갔다 오는 일조차 힘들다.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 피곤하고, 돌아와서는 죽은 듯이 잠을 잔다. 머리를 대자마자 잠들어버리고, 알람을 듣지 못하고 깨지 않고 내리 몇시간씩 잠을 잔다. 환한 대낮에,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그렇게 홀로. 혈당이 올라가고, 피부색이 노르스름해진다. 황달증세가 나타난다. 어떻게든 가려보려, 당신을 만날때나 밖에 나갈땐 평소에 하지 않던 화장을 한다. 밖에 나갈땐 그래도 다른이와 다름없이, 예쁘게. 난 아픈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지금까지 한 적 없던 화장을, 30분넘게 공들여한다. 먹은 것이 없는데도 토하고. 약간의 스트레스만 받아도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심장박동이 뛴다. 100미터 전력질주를 3-4번 반복한 것처럼. 그 몸을 하고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반까지 공방에 있었다. 머니클립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다 했다 싶었는데, 카드가 들어가지 않는, 사이즈 미스로, 다시 뜯어내고 다시 재단하고 스티치를 넣는 작업을 했다. 그제야 예쁘다. 머니클립 속에 미리 써둔 카드를 넣는다. [항상 고마워요.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길. 사랑합니다. -찐] 당신 이니셜을 불박으로 넣고 가만히 만져본다. 이틀이 지나고, 저녁시간 승아네 카페에서 당신을 만난다. 짜잔! 하며 머니클립을 내밀었고, 당신은 웃으며 뭐하러 만들었어, 힘들게. 예쁘다. 하고 고맙다고 말한다. 이건 이렇게 했고, 저건 저렇게 했고, 카드가 안들어가서 다시 만든다구 오래걸렸어.. 라며 따발따발 말하는 나를 보고 당신이 웃는다. 지갑을 꺼내서 필요한 카드와 지폐를 옮기는 당신을 보며 예쁘지? 묻는 내게 당신은 응, 예쁘다. 힘든데 이런거 하지말지.. 한다. 뭐라도, 내가 할 수 있을때 해주고 싶어. 오래 간직 할 수 있는 거. 그런 나를 보며 웃는다. 내가 할 수 있을때 해야지, 나중엔 하고 싶어도 못하잖아. 주말에 부모님을 따라 포도밭에 가서 일을 했다고 한다. 이제 머루포도 수확철이라 바쁘다고.. 저녁에 잠깐 집 앞에 나오라는 연락을 받고 나갔다. 커다란, 머루포도 5Kg 상자 세 개가 트렁크에 놓여있다. 뭐야? 포도지, 뭐야. 내가 가서 땄어. 이렇게나 많이 줘? 너 먹고, 어머님 드리고, 주변사람들하고 나눠먹고 하라구. 한 박스 얼마래? 아버님 고생하셨겠다. 내가 값 다 쳤으니까 그냥 먹어. 피도 맑게 해주고, 몸에 좋다. 알았지? 내 마지막을 준비하고, 또 나는 당신 몰래 당신과의 마지막도 준비한다. 언제나 매일, 항상 준비해오던 이별이지만. 당신은 또 나보다 괜찮을 것 같지만. 나는 당신에게 따뜻하고 사랑할 만한, 그런 사람이고 싶다. 일주일에 한번, 항암을 한다. 1차를 했는데,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 그냥 그런 화학적 치료말고, 그냥 좋은 것을 보고, 먹고, 느끼고 살다가 가고싶다. 그러다 암이 더 커지지 않고, 전이 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는다면 기적이라 여기며, 감사하며 그렇게 살고싶다. 웃기게 나는,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는다는걸 다행이라 여기고 있다. 항암 1차 이후, 3키로가 빠졌다. 나는 괜찮다. 어쩌면, 최면을 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괜찮다, 괜찮다. 말하고 되뇌이다보면, 정말 괜찮아질 지도 모르니까. 암세포가 더 커지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면, 그냥 내 몸의 일부라 생각하고, 감사하게 살 준비가 되어있는데. 이놈이 그렇게 해주려나 모르겠다. 이미 내 몸속에 들어와 자리 잡은 걸.. 또 어지럽고 숨이 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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