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사진주의) │ 지난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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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배낭 안에 짐을 똑바로 쌌는지, 체크리스트를 확인해가며 몇번이나 뒤적이고.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른채 푹 자다가 5시쯤 일어났다. 알람이 두번 울리고, 나는 씻고 머리를 말리고, 배낭을 다시 챙기고 내복을 챙겨입고, 동계용 소쉘을 챙겨입고, 경량구스를 입을까말까 하다가 그냥 고어자켓을 걸치고, 배낭 앞에 스틱을 걸어서 신발을 신는다. 집 앞에 미리 시동을 켜놓고 기다리는 당신. 당신은 고어는 가방에 있고 경량구스를 입었다. 근처 가까운 지하철역에 주차를 하고, 산악회 버스 출발지로 향한다. 벌써 꽤 많은 사람들이 나와있고, 이내 출발한다. 버스 안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까무룩 잠들었다가 휴게소에서 산악회 사람들과 콩나물국밥을 후루룩 먹고 또 잠들었다가 하다보니 어느새 태백이란다. 10분 이내에 도착한다고 방송을 한다. 바글바글한 유일사 매표소 앞 주차장. 눈꽃산행지로 태백산이 유명하다보니 전국 곳곳에서 산악회 버스들이 즐비하다. 개인적으로 온 승용차들도 많고. 버스에서 내려 스패츠를 차고 아이젠을 신고 걷는다. 가파른 오르막이 먼저 반기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정말 사람들 엉덩이만 보고 올랐던 것 같다. 어느정도 고도에 올라서야, 갈림길에서 샛길로 빠지는 산객들과 유일사로 들어가는 산객들로 나뉜다. 샛길로 올라서니, 예년에 비해 눈이 많이 오지 않았다는 걸 실감한다. 푹푹 발이 빠질 것을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적은 양의 눈.. 사람이 많아서 , 앞의 사람들이 잠깐 멈추면 줄줄줄 멈춰서야하는 속도. 그래서 덕유산때보다 수월했던 것 같다. 산악회 사람들이 우리 사진도 찍어주고, 반갑다고 인사하고 안산하라 말하고 지나간다. 나무들이 눈꽃을 피우고, 구석구석 평편한 쉼터같은 곳에서 초콜릿 두조각씩 나눠먹고 물 한모금 하고 다시 오른다. 당신은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고, 나는 가뜩이나 손발이 차서, 장갑을 벗을 엄두조차 못 낸다. 원래 끼던 동계용 윈드스토퍼 장갑을 끼고 그 위에 고디니 장갑을 끼니 그나마 좀 낫다. 하지만 벙어리장갑이라 움직임이 수월하지 않다. 중간중간 당신은 앞서다가 뒤따라 오르는 나를 챙긴다. 괜찮냐고, 묻고 나는 응 괜찮아, 하고 숨을 내쉰다. 그래도 덕유산때보다 잘 따라오네, 쉬는시간도 많이 줄고.. 하며 당신이 웃는다. 넥워머 속에서 당신의 웃는 입매가 떠오른다. 꽤 높은 고도에 오르니, 바람이 매섭게 불기 시작했다. 모두가 멈춰서 옷을 단단히 껴입는다. 이제 태백의 칼바람이 시작되는 능선이란다. 오르는 길에 더워서 벗어던진 고어를 다시 꺼내입고, 당신은 모자도 쓰라며, 내 머리에 모자를 씌운다. 그 위에 또 고어자켓의 모자까지 씌운다. 넥워머도 콧등까지 올리고 눈만 내놓고. 칼바람이 불고, 입김때문에 젖었던 넥워머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고. 오르는 중간중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풍광을 바라보니 태백산맥 산맥이 과연. 웅장하고 멋있다. 하얀 눈들이 쌓인 능선과 산세들이 가슴 깊이 와닿는다. 와...... 소리만 내뱉는다. 능선길은 주목 군락지로도 유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곳곳에 모여 사진을 찍고, 점심때가 되었는지 밥을 먹고 있다. 우리는 곧장 올라 천제단에서 풍광을 감상했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들었다가 몰아치는 칼바람에 손끝이 얼어서 이내 다시 장갑을 끼고 당신이 이곳저곳 사진을 찍는다. 다시 걷고, 뽀득뽀득 눈 밟는 소리를 들으며 태백의 장군봉에 오른다. 너른 공터같은 정상. 그리고 정상석 주변의 많은 사람들때문에 인증샷은 찍지도 못하고 멀리서 장군봉, 태백산 정상석 사진만 찍고- 멀리 보이는 산맥들을 보고, 멋있다. 저기는 어딜까, 여기서는 소백도 보인다던데.. 하며 나무나무마다 피운 눈꽃들과 파란 하늘을 본다. 하산길도 덕유산보다 좀 수월했던 것 같다. 망경사에서 점심을 먹었다. 절 아래에서 취사가 가능하다고 해서, (물론 취사금지구간에서 취사하는 사람도 있었음) 요즘 대세인 비닐쉘터를 뒤집어쓰고, 그 안에서 따뜻하게 라면을 끓이고 미리 양념해간 소불고기를 익혀서 먹는다. 맛있다. 산에서 먹는 라면이 제일 맛있다며, 당신은 내가 만든 불고기도 맛있다고 엄지를 든다. 다 먹은 뒤 깔끔하게 정리하고 다시 하산길에 오른다. 뒤따라오던 어느 산객이 내 뒤꿈치를 밟았고, 몰랐는데 당신이 살펴보고서야 아이젠이 끊어졌다는걸 알았다. 그래도 무리없이 잘 내려왔고, 헉헉대며 생수병을 꺼내드니- 물이 다 얼었더라. 가방 앞자락에 걸려있던 컵에도 살얼음이.. 그리고 비닐 속에서 밥 먹느라 습기로 젖었던 내 머리카락도 얼어서 꾸덕꾸덕.. 둘이서 하하하하, 하고 웃고 너무 좋았다고 말한다. 산악회에서 온 거라, 하산시간에 맞춘다고 맞췄는데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체력도 전보다 조금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다시 허기진 배를 채운다고 남았던 육포를 먹고 물을 조금 먹고 둘이서 까무룩 또 잠들었다. 눈뜨니 어느새 영주ic에 들어섰고, 또 잠들었다가 눈뜨니 군위휴게소. 잠시 쉬었다 간다길래 당신과 내려서 스트레칭을 하고 휴게소에서 커피와 나는 유자차를 사들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 스크린에서 축구 중계를 하고, 산악회사람들과 축구경기를 보고 와~하고 소리 지르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도착. 수고하셨어요. 다음 산행때 또 뵈요, 하며 사람들과 인사한다. 다시 배낭을 매고, 지하철을 탄다. 털모자를 쓰고 산행한 탓에 머리가 엉망이라, 그냥 모자를 쓰고 지하철을 탔는데 유리에 비친 내 모습에 한참 웃고 당신의 퀭한 눈에 한참 웃는다. 한살 더 먹어서 그런가, 피곤하다며 당신이 꾸벅꾸벅 존다. 지하철에 탄 사람들이 우리를 힐끔거리며 산에 갔다오셨어요? 하고 말도 건다. 네, 태백산에... 하고 웃으니, 우와.. 좋으셨겠어요, 하고 같이 웃는다. 나와 함께해줘서 고마워. 나야말로, 이 시간을 함께해줘서 고마워. 다음에 또 가자. 어디가려고? 한라산 갈까? 당일산행도 있다던데! 그러자, 다음이나 올 겨울엔 다시 한라산 가자. 하고 웃는다. 생각보다 태백산이 맘에 안들었다. 덕유산만큼 많은 눈을 예상했는데 눈도 많이 적었고, 사람이 너무 많았다는 아쉬움. (그래서 페이스대로 올라가기도 힘들었고, 풍광 감상하기에도 힘듬) 칼바람은 소백산이 최고라고, 소백갈래? 하길래 나는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다. 나 진짜 죽어.. 하며 우는 시늉을 한다. 처음 만났을때처럼 한달에 한번은 낮은 산이라도 다녀야겠다며, 떨어진 체력에 스스로 실망하는 당신에게 그러자, 나도 작년엔 낚시한다고 당신하구, 산에 안 다녔더니 힘드네, 하고 웃는다. 토닥토닥하며, 빨리 들어가서 자자-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서로 목간을 다녀오고, 차 한잔하고 삭신이 쑤신다며 곡소리를 낸다. 한살 더 먹어서 그래, 하며 합리화 시키니 그게 더 슬프다고 웃는다. 다들 좋은 곳에 다녀왔다며 부러워한다. 좋은 곳에 다녀온 것보다, 당신과 함께여서 더 행복했다. 당신과 태백산의 풍광, 산맥들의 웅장한 모습을 같이 서서 같이 바라봤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당신과 나눠먹은 초콜릿과 물, 커피. 함께 해먹은 점심. 버스 안에서 서로 머리 맞대고 잠든 시간들. 당신 핸드폰 배경화면과 카톡 프로필사진 모두가 태백산 사진으로 바뀜과 동시에 나 또한 태백산 사진으로 변경했다. 멋있다. 한동안 심장이 뜨거워질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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