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에서 _ 나희덕 │ 2016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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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찾아온 깨닫음을 확인하고 싶어 시집을 챙겨 전철을 탔다. 나희덕 시의 선문답들이 어떤 의미인지 알거같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 "성공을 위한 삶보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삶을 살아라"는 의미로 읽었는데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부끄러움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다. 살아가며 겪는 갈등속에서 내안에 숨겨져있던 유치함, 속물 근성, 비겁함, 열등감, 인정 욕구, 분노를 마주치는데 이건 까도까도 끝이 안보이는 양파껍질 같다. 내속엔 나도 몰랐던 내가 엄청 많은거다. 산다는건 가도 가도 부끄러움을 마주치는 과정이고 이 나이먹도록 더 나은 인간이 되질 못했단걸 깨닫는 과정인거 같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에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 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속에 갇힌 시간'" 이라니? 항상 그 의미가 불명료했다. 이제보니 시인은 셀프 위로를 하고 있는거다. 살다보니 오로지 홀로 견뎌야 하는 시간이 있다. 누구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그런 시간. 시인은 그 시간을 갇힌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산길에 끝이 있듯이 다행히 그 견딤의 시간도 분명 끝이 있다. 산아래에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가파픈 하루 하루의 고비도 견디었질 않은가? 갇힌 시간은 끝난다. 언젠가. 속리산에서 -나희덕 - 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남아 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에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 높이를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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