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삶에 대한 태도'같은 것을 이야기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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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실에라도 묶인 새는 날지 못한다. 새는 자유를 위해 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 자체가 자유이다. 다시 오지 않을 현재의 순간을 사랑하고, 과거 분류하기를 멈추는 것. 그것이 바람을 가르며 나는 새의 모습이다." 류시화의 글 중에서 메모해 두었던 부분이다. 지난 가을이었을 그때, 이 몇 문장을 반복해서 읽자니 입 안이 텁텁해지고 마음은 답답해졌다. 잠시라도 세상의 모든 일과 단절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작은 그릇은 몇 가지 일만으로도 차고 넘쳐대곤 했다. 그렇지만 그러는 동안, 인상을 쓰거나 표정을 일그리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눈썹 주위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을지 몰라도. 물론 그의 글을 진리로 여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과거 분류하기를 그만두라'는 것은 언젠가 아주 필요로 했지만, 이제는 때가 늦은 조언이었다. 그 사람과의 시간, 그 사람에 대한 일은 무엇이든 '과거의 것'이라고 정해두고, 그 안에서도 분류를 마쳐야만 안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연상된 작은 기억에서 이어진 다른 기억들을, 촉발된 감각들을, 그 끝에 예고 없이 몰아치는 격정을, 그래야만 다스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 그날 밤, 가로등 주변에는 의외로 벌레가 많지 않았다. 바람은 미적지근했고 ,좌광천의 많은 벤치들 중의 한 곳에 앉아서 우리는, 말하자면 '삶에 대한 태도'같은 것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언젠가 말하길 당신은, 그때의 대화로 나에 대한 좁힐 수 없는 거리감을 느꼈다고 했다. 요즘도 문득 떠오르는 그날의 몇 가지 말들을 '후회스러운 일'이든 '안타까운 일'이든, 무엇으로든 분류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밖에 내가 행하거나 행하지 않은 여러 일들에 대해서도 틀림이 없이 분류하고자 오랫동안 얽매이며 부자유에 시달렸다. 분류를 그만두고 나니, 그때의 나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라고 해서 고독을 즐기거나 당연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외로움을 두려워했을 뿐이지. 그때의 당신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 것 같다. 착각일지라도, 지금은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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