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만 보다가... │ 미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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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이의 일기 -- 2000. 12. 15 금요일 새벽 비 야경만 보다가... 08시 15분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누가 좀 전에 탔는지 은은한 향수냄새가 아직 남아있네요. 학원에 늦을까봐 부랴부랴 나왔는데 향수 냄새 때문에 좀 느긋해 집니다. 아침 향수와 저녁 향수는 다르다고 하죠? 아침은 상쾌한, 저녁은 부드럽고 달콤한... (제가 향수에 좀 약하죠?) 엘리베이터가 2층에 서네요 2층이면 걸어 내려가도 될텐데... 아저씨 한 분이 타십니다. 한 손엔 가방, 한 손엔 타고 있는 담배. 2층에서 탄 것도 그렇지만 밀폐된 곳에서 굳이 담배를 피워야 하는지... -___-;; 기분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순간에 벌어집니다. 문이 열리고 전철역까지 열심히 뛰어갑니다. (뛰지 않게 좀 일찍 나오지... 하지만 매일 뛰게 되네요.) 11시 30분 학원 수료식이 있었고 학원생 들과 아쉬운 마음들을 나눕니다. 반팔 입고 만난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한해의 끝에 왔다니... 중간과정쯤엔 내가 왜 학원에 가야 하나 당위성도 없는 것 같고 의무도 없어서 그만두고 싶었죠. 그 기간을 잘 넘긴게 지금 여기까지 오게 했군요. 그래서 반장을 하려고 했는지도 모르죠. "선생님 제가 반장할게요..." 책임감이 덤으로 붙어 다니고 그만둘 수 없는 상황에 날 몰아넣고 끝까지 다닌지도... 친구들 얼굴도 역시 아쉬움과 즐거움이 베어 나옵니다. 점심을 같이 먹고 주소록을 교환하고 헤어집니다. 다시 시작하는 맘으로 학원을 떠나지만, 걱정 반 기대 반 학원을 떠나지만, 다시 시작하는 발걸음들이 가벼웠으면 좋겠습니다. 새벽 01시 50분 창밖의 야경은 언제나 아름다워 보입니다. 차들이 저렇게 분주하게 달려가고 다리 밑 강물은 언제나 그렇듯이 유유히 흐르고... 야경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세요? 멋있다? 그냥 무덤덤 하다? 혹시 야경을 보면 저 많은 불빛들 중에 내 불빛은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 안 드세요? 내 불빛은 여러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밝고 환한 불빛일까? 아니면 깜빡이며 어디로 가는지 그저 분주하게 달려만 가는 불빛인가? 희미하게 존재도 없는 불빛인가? 서울의 야경은 언제나 그렇게 아름답습니다. 도시가 아름답고 세상이 아름답고 당신이 아름답고, 우리 불빛도 존재의미로도 아름답습니다. 03시 20분 지금도 야경은 그렇게 언제나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저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서 매번 달라 보이네요. 오늘은 불빛들이 분주하게만 보이고 어디론가 바삐 가는 것만 같습니다. 비가 오네요. 눈이 안 오고 때아닌 비? 기다리는 눈좀 오지... 젖은 수건을 의자에 걸고 양치질하고 하루를 마감해 봅니다. 먼 불 빛 안도현 들녘 끝으로 불빛들이 일렬횡대로 줄지어 서 있는 만경평야 이 세상 개울물을 잠방잠방 맨처음 건너는 아이들 같구나 너희도 저녁밥 먹으러 가느냐 날 추운데 쉬운 일이 아니다 결코 저 스스로 몸에다 불을 켠다는 것 그리하여 남에게 먼 불빛이 된다는 것은 나는 오늘 하루 밥값을 했는가 못했는가 생각할수록 어두워지는구나 비를 맞으며 서정윤 살아 있다는 것으로 비를 맞는다 바람조차 낯선 거리를 서성이며 앞산 흰 이마에 젖는다 이젠 그만 흘러가는 대로 맡겨두자 보리의 눈물이 그칠 때까지 태양은 숨어 있고 남루한 풀잎만 무거워진다 숨어 있는 꽃을 찾아 바람에 치이는 구름 낮은 자리에 우리는 오늘도 서 있고 오늘만은 실컷 울어도 좋으리 오늘만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땅의 주인이 되어져 있지 못한 보리이삭이 잊혀지고 편히 잠들지 못하는 먼저 죽은 자들의 영혼을 달래며 비는 떨어지고 있었다 마음에도 젖지 않은 빗물이 신암동 하수구에서 가난이 녹은 눈물에 불어나고 낮은 구름이 지워지고 있었다 이제 그만 흘러가는 대로 맡겨두자 하늘조차도. --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자연에게 진실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나이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고 우리의 일을 해야 한다. 윌리암 하즈리트 (Willian Haxlitt) -- 오늘 짱이의 일기 끝. 홈 : www.hanealin.co.kr 멜 : hanealin@hananet.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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