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켄지의 고백을 듣고.   공개
  hit : 3716 , 2009-10-17 04:29 (토)

거의 매일 빠뜨리지 않고 챙겨보는 TV프로그램들이 몇가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오프라 윈프리쇼'이다.  NBC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 4시, 주 5회나 방영되는데, 이 토크쇼 바로 전 3시에
하는 '닥터 필쇼'부터 연이어 시청하곤 한다. '토크쇼 천국' 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미국방송들은 일인 진행자와 초대된 게스트들로 이루어지는 토크쇼 프로그램들이 많다.

세계적인 토크쇼의 여왕이 진행하는 '오프라'를 보고 있자면, 어떤 경우는 저속하고 속보이는 센세이셔널리즘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인도적이고 훈훈한 내용들로 감동과 자극을 선사하거나 사회적인 이슈들을 집중조명하며 경종을 울리기도 한다.

또 보아하니,  타 방송 인터뷰 프로나 토크쇼에는 얼굴도 안내미는 거물급 유명인사들도 중대 발표를 할경우, '피플' 지를 통해 먼저 운을 띄운 후 '오프라'에 출연하여 좀더 자세하게 자신의 의사나 심중을 표명하는 게 거의 관례화 되어 있는 듯하다. '메켄지 필립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기사내용과 '오프라'에서 밝힌 내용을 종합한 대략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얼마전, 우리에게도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g)'이라는 유명한 올드팝으로 친숙한 포크록 그룹 '마마스 앤 파파스(The Mamas & the Papas)'의 리더인 존 필립스의 딸 메켄지 필립스가 자신의 아버지와의 근친상간 사실을 고백했다. 자신의 자서전 '하이 온 어라이벌(High on Arrival)'에서 전 남편과 결혼 전부터 친부인 존 필립스와 잠자리를 가졌으며, 올해 마흔아홉인 그녀는 19세 때 결혼식 전날 마약에 취한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마약을 복용한 상태에서 강간당했으며 자신의 기억에 따르면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그녀의 책에서 밝혔다.


메켄지는 아버지와 함께 '뉴 마마스 앤 파파스'라는 밴드로 투어 활동을 했으며 두 사람의 관계는 상호합의하에 지속적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십년이상 지속된 그들의 관계는 메켄지가 임신을 하면서 중단되었는데, 임신한 자신의 아이가 남편과 아버지 중 누구의 아이인지 알 수가 없었던 그녀는 임신중절과 함께 아버지와의 관계를 끝냈다고 한다.

역시나, 몇주전 오프라를 통해 처음 이 충격적인 고백을 접했을때, 나 자신도 몹시 의문스러워했던
메켄지가 사용한 '상호합의하에 지속된 관계(consensual relationship)'라는 용어는 사회적으로 대단한 파장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메켄지 방영이후 이와 관련한 후속 방송이 몇차례 더 있은 후, 어제 '오프라'에서는 근친상간으로
고통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게스트로 나오거나 음영처리한 영상진술을 통해서 자신들의 상처와 사연을 함께 얘기하고 치유의 길을 모색해보는 'Incest Survivors'가 방영되었다.

메킨지도 화상으로 대담에 참여했는데, 그녀는 'consensual' 이라는 단어를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겪은 전세계의 수많은 근친상간 희생자들이 보내준 지지와 공감의 메일들과 그들과의 만남, 몇차례의 방송출현과 수많은 기자들과의 인터뷰 등을 거치면서 좀더 정확한 표현인 '학대(abuse)'로 정정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얼마전 뉴스기사에서 여자들이 성관계를 갖는 이유의 80%이상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메켄지를 포함해서 방송에 참여한 대부분의 근친상간의 희생자들은 그들의 가해자인 아버지나 (혹은 어머니) 오빠를 여전히 사랑하며 또한 증오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의 이러한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심경은 차분히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일 만도 아니다. 

스킨쉽에서 시작되어 서서히 진행 단계들을 거쳐 어느 순간 강간에 이르렀을 것이고, 그럼에도 가족관계로 얽혀있는 복잡하고 벗어나기 힘들었을 그들의 상황이 짐작이 된다. 특히 어린 나이일수록, 그리고 친모와의 관계가 소원하거나 너무 바빠서 방치되다시피한 경우들은 더욱 그렇다.

가해대상에 대한 혼란스럽고 복잡한 감정상태, 무섭고 끔찍한 비밀로 인한 외부와의 단절과 고립, 애정을 느끼는 대상의 집요하거나 교묘한 요구를 차마 거절하지 못하는 여성 특유의 배려심과 헌신, 관계가 반복되면서 헤어나올 수 없는 깊은 절망감, 무력감과 죄의식은 더 심해졌겠지만,  더이상 강제적인 관계라고는 할 수 없으니 급기야 상호합의적인 관계라는 생각을 스스로도 갖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처음엔 나도, 시작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이후 오랜 세월 상호합의적인 관계를 지속했다면, 전세계적으로 전파를 타고 나가는 유명한 방송프로에 나와서 저렇게 떠벌릴 것까지 뭐 있나 싶었던 게 사실이다. 근친상간 같은 문제는 쉬쉬하면서 음지에나 묻어놔야지 공공연하게 떠벌리며 양지로 가져나오면, 더군다나 영향력을 무시못할 세계적인 유명인사도 그랬다네, 이런 식이 되면 사회적으로 미치는 파장과 그로인한 폐해가 훨씬 더 심각해지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들의 사연을 들어보니, 이대로 덮어 가려두기에는 문제의 실태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었고, 수많은 피해자들은 이러한 사회적인 냉대와 질시때문에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이해받기를 원하며, 상처를 남몰래 숨기고 싸매만 두는 게 아니라, 실은 햇빛에 드러내놓고 치유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

메켄지는 이렇게 호소한다. "고립되는 것, 자신을 더럽다고 여기는 것, 그것은 당신을 파멸시킬 것이다.(Being lonely, feeling dirty.. it will ruin your life.)"

그것이 나의 상처든 다른 이들의 것이든, 사람이라서 지니게 된 아픔과 상처들을 다독이며 보듬어 안아주고 싶다. 사람 사는 세상에  아직도 나를 놀라게 할만 한 일들이 얼마나 더 남아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런 일들이 많이 줄어든 건 사실이고, 알아야하고 대면해야할 일이라면 이를수록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리고 나 자신의 나약함으로 인해  앞으로도 때로는 주저앉는 일을 반복할지 모르지만, 그럴 때마다
절망보다는 희망, 냉대보다는 사랑의 증거들을 붙잡고 다시 일어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바른생활  09.10.18 이글의 답글달기

사랑은 용기를 일깨워주는 힘인 것 같아요. 용기가 필요한 저에게도 사랑은 너무나 갈구하는 것이구요... ^^

바다에는  09.10.18 이글의 답글달기

전 타이라뱅크스를 좋하는데. 오프라윈프리쇼를보기가 쉽지가 않아서...사람은 누구나 각자 가치관이 트려서 받아들이는건 같지가 않은것같네요 ^^;;
'상호합의하에 지속된 관계(consensual relationship)' 라는것도 제 의식하에서는
어려운 이야기인지라..그냥 아직가지는 7080 노래들이나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저한테 더큰 영향력이있고 맘에 와닫네요 ^^

프러시안블루  09.10.19 이글의 답글달기

그녀는 자신을 더럽다고 느꼈고 많이 상처받았군요.

단편적으로 접한 이 사건을 제가 오해했었네요.
지하철 무료신문에서 이 기사를 처음 봤을때 떠올랐던 생각이
"대단하군!"이였거든요.

그녀의 고백이 <도덕에 대한 근본적 물음> 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일종의 메타 물음 이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아빠하고 자면 안되는 거야?
헤픈게 나쁜거야? (영화 "가족의 탄생" 대사)
살인이 나쁜거야? (살인을 저지른 어느 일본 고등학생의 조사 기록)
동성끼리는 왜 사랑하면 안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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